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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정석준 법사,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08월 26일(목)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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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기독교에서는 아담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은 것을 두고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도 인간이 져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에게 과연 자유의지가 있는가? 이 문제는 오랫동안 지금까지도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가 “나는 내 삶을 결정할 수 있다”라고 말할 때, 여기에는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점이 전제되어 있다. 자유의지는 합리적인 결정의 주체가 다양한 대안 가운데 하나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예를 들어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은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먹을지, 먹지 않을지를 결정할 수 있으며, 다양한 맛의 아이스크림 가운데에서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자유의지는 책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가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할 때, 어떠한 책임이 뒤따르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자유의지에 따라 큰소리로 노래를 할지 말지를 결정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어떤 장소냐에 따라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따라서 “내 삶을 결정할 수 있다”라는 말에는 자유의지와 그에 따른 책임까지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말은 자신의 행동이 자유의지와 무관하다는 주장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행동의 책임이 자신에게 있지 않음을 주장하는 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을 넘어뜨려 다치게 한 사람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주장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갑자기 자신에게 차가 달려왔고, 그것을 피하려고 다른 사람을 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경우 넘어뜨린 사람의 책임은 면제되거나 최소한 많이 줄어들 수 있다. 따라서 행동의 책임을 물을 때 자유의지에 따른 행동인지를 가리는 것이 중요하다. 한편 결정론자들의 주장은 윤리적 교육과 도덕적 선택 내지는 행위 간에는 버너를 가열하는 것과, 버너 위의 주전자가 끓는 것 사이에 성립하는 것과 같은 엄밀하고도 필연적인 인과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현대 뇌과학에서는 자유의지라는 것은 잠재의식의 노예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의식을 측정하는 이 실험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선 피험자 한 사람을 의자에 앉히고 버튼을 주면서 “마음 내킬 때 이 버튼을 누르세요”라고 요구한다. 그리고 피험자가 버튼을 누르려고 할 때의 뇌의 활동을 관찰하면 되는 것이다. 마음 내킬 때 버튼을 누르는 것이니, 이것은 분명 자유의지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버튼을 누르자’라는 의식이 먼저 나타나고, 그 다음에 손을 움직여서 버튼을 누를 거라고 예상하게 된다. 그런데 결과는 달랐다. ‘마음 내킬 때 버튼을 누른다’는 가장 간단한 행동이 놀랍게도 자유의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뇌파 모니터링을 통해서 뇌활동을 관찰해보니, 제일 먼저 ‘운동전령’이라는 운동을 프로그램하는 부분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리고 놀랍게도 1초쯤 지나서야 ‘움직이자’라는 의식이 나타났다. 즉 뇌가 먼저 움직이려고 나섰다는 것이다. ‘움직이자’라고 생각한 것은 무의식인 셈이다. 왜냐하면 ‘움직이자’고 생각한 순간에는 이미 뇌가 움직이려는 준비에 들어간 상태이므로. 이런 결과를 보면 ‘쿼리아’는 뇌활동을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뇌활동의 부산물 따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움직이자’라는 쿼리아가 먼저 생겨나고, 그에 따라 몸을 움직여서 버튼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먼저 무의식적으로 신경이 활동하기 시작하고, 그 무의식적인 신경활동이 손운동을 촉발해서 ‘버튼을 누른다’는 행동을 낳고, 동시에 뇌에 쿼리아, 즉 ‘누르자’라는 의식이나 감각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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