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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제색도와 시화상간(詩畫相看)
전인식 시인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08월 12일(목)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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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이 도시 저 도시마다 이건희 컬렉션을 유치를 위한 현수막들이 즐비하다. 지자체마다 우리 고장이 최적지라며 유치경쟁을 하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에는 국보 14점과 보물 46점을 포함해 2만3000여 점의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는데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조건 없이 기증했다. 문화계에선 미술품의 감정 평가액이 3조 원대, 시가로는 10조 원대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많은 소장품 중에 가장 먼저 언급되는 작품이 바로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이다. 만약에 경매로 나온다면 1,000억대 이상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내 그림 중에 최고가이다. <인왕제색도>는 이건희 컬렉션의 1호 작품이고 이며 고 이건희 회장이 무척 아끼던 작품이었다는 기사를 접한 바 있다. 국보 21호 인왕제색도에는 겸재 정선과 사천 이병연이 시와 그림으로 진한 우정을 나눈 내력이 숨어있다. 1751년 사천 이병연이 노환으로 몸져눕자 사경을 헤매는 친구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 겸재는 붓을 들었다. 비 갠 인왕산의 기개처럼 건강을 기원하며 화선지에 필묵을 휘갈겼다. 그의 나이 76세 고령의 나이에도 마지막 남은 힘 끌어모으고 모아 불꽃을 피워 올리듯 화폭에 담았다. 시커멓게 먹물을 묻혀 힘차게 그려나간 붓질 끝에 드러난 인왕산은 금강석만큼 단단하고 힘이 넘친다. 흰 안개와 검은 바위의 흑백대비로 산은 장엄하고 성스러울 정도다. 하단의 기와집은 사천 이병연의 집으로 여겨진다. 실제로 사천 이병연은 북악산 서쪽에 살았고, 겸재는 북악산 남쪽에 살았다. 두 사람 사이에 인왕산은 손에 잡힐 듯한 거리에 있었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 최고의 명작이 태어나는 이면에는 아름다운 육십 년 지기 우정뿐만 아니라 안타까움이 함께 존재한다. 겸재는 친구 사천의 건강을 위해 인왕제색도를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사흘 후 사천 이병연은 생을 다하고 만다. 벗을 잃은 겸재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 겸재에 비해 덜 알려졌지만 사천 이병연은 영조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이었다. 일만수 이상의 시를 지었으나 대략 500여 편이 전해지고 있으며 저서로는 ‘사천시초’가 있다. 두 사람은 10대부터 스승인 김창흡 아래 동문수학한 죽마고우였다. 어릴 적부터 죽을 때까지 시와 그림으로 우정을 나누었다. 한사람이 그림을 보내면 시를 적었고, 시를 보내면 그림을 그렸다. 시는 그림이 되고 그림은 시가 되었다. 두 사람의 우정을 나타내는 그림은 인왕제색도 외에도 대표하는 그림이 시화상간(詩畫相看)이 있다. 1740년경 그려진 이 그림은 물이 흐르는 계곡 옆 노송 아래 널찍한 바위에 걸터앉은 두 사람이 정담을 나누고 있다. 얼굴이 보이는 사람이 사천이고 등이 보이는 사람이 겸재이다. 그림 속 소나무와 돌 그리고 물은 변치 않는 우정을 의미한다. 옛날부터 시와 그림은 함께해 왔다. 시와 그림에 대해 송나라 때 시인이자 화가인 소식은 ‘시중유화, 화중유시(詩中有畵 畵中有詩)’로 표현했다. 이처럼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는 문인화의 전통이 오늘날에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시와 그림, 시와 사진 그리고 포토 포엠, 캘리그라피도 좋은 예가 되겠다. 요즘 점차 붐이 일고 있는 네다섯 줄 안팎의 시와 사진을 곁들인 디카시도 한 영역을 구축해 가고 있다. 시는 소리 있는 그림이고, 그림은 소리 없는 시라는 말이 있듯 시와 그림이 더불어 발전하였으면 좋겠다. 다양하고 개성있는 형태로 콘텐츠가 넓어졌으면 좋겠다. 아울러 새로운 콜라보를 통해 명작이 태어났으면 좋겠다. 겸재 정선과 사초 이병연 사이에서 인왕제색도가 태어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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