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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순례5 - 우리 정서와 문학의 뿌리를 담은‘제망매가’
강병찬 본지 취재국장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07월 01일(목)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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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죽고 사는 길은 / 여기 있음에 두려워하고 / ‘나는 갑니다’ 말도 / 못다 이르고 가는 것입니까? /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 여기저기 떨어지는 잎같이 / 한 가지에 나고는 /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 아으! 미타찰에서 만날 내 / 도 닦아 기다리겠습니다.”(이임수 현대역) 낭승(郞僧)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제망매가(祭亡妹歌)는 일연 스님이 삼국유사에 ‘특별히’를 써넣은 만큼 매우 ‘특별한’ 신라향가다.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향가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집단적·정치적 존재이기 이전에 개성적·감성적 존재다. 월명사는 누이의 사별을 소재로 절절한 그리움을 담아 제망매가를 지었다. 제망매가에는 생과 사, 대자연과 신앙을 자연스럽게 대조했다. 그래서 제망매가는 우리 정서와 문학의 뿌리가 된다. 월명사의 작품 중 왕명에 의해 지은 도솔가(兜率歌)가 짧은 4구체이고, 배경 설화는 경덕왕(景德王, 신라 제35대, 재위 742∼765) 위주로 짜여있다. 그러나 도솔가와 함께 소개된 것에 불과한 제망매가는 10구체의 완벽성과 더불어 고유의 서정성으로 인해 가장 널리 애창되는 향가가 됐다. 시문학에서의 서정성은 어느 작품에서나 공통으로 존재한다. 향가문학의 서정성도 보편적으로 사랑과 죽음, 삶의 문제 등에서 크게 예외적이지 않다. 향가가 국가적 기원과 종교적 기원을 위해 지어졌다고 하지만, 향가를 향가답게 하는 것이 뛰어난 서정성이다. 월명사는 제망매가에서 누이를 때가 되면 제각각 흩어지는 ‘한 가지에 난 잎’으로 표현해 동기 간의 친밀성을 강조하고 있다. 월명사가 재(齋)를 올리며 이 노래를 지어 불렀더니, 홀연히 바람이 불어와 지전(紙錢, 종이돈)을 날려 서쪽(서방정토)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미타찰(彌陀刹)’은 아미타불이 있는 곳으로 무량수(無量壽)를 누릴 수 있는 서방 극락정토를 의미한다. 그곳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은 아닌데, 본문에서는 누이가 이미 그곳에 가 있다고 전제한다. 월명사는 기원하는 바를 이뤄진 현실로 끌어당겨 간절한 염원을 사룄다. 제망매가는 이처럼 불교의 만가(輓歌)로 지어졌는데도 표현들이 우리 고유의 선(仙) 사상과 접목해서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이것은 신라시대의 불교가 ‘민중 불교’의 복합적인 성격을 반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제망매가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정성은 종교적 주술성을 압도한다. 월명사는 당시 사천왕사에 머물렀다. 월명사는 향가에 능한 시인이자 작곡가이며, 저를 잘 불어 달을 멈추게 했다는 불세출의 연주가이기도 했다. 그가 누이의 재를 올린 장소도 사천왕사로 추정된다. 사천왕사(四天王寺)는 경주시 배반동 낭산(狼山)에 있었던 통일신라의 국찰이다. 679년(문무왕 19)에 창건됐다. 당나라는 서기 674년 신라가 그들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서 식민통치를 위해 세운 도독부(都督府)를 공격한다는 핑계로 대군을 일으켜 신라를 공격했다. 신라는 부처님의 힘으로 그들을 퇴치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 이 절을 창건했다. 사천왕사 맞은 편 마을이 월명리로 불렸다고 하는데, 이는 월명사와 사천왕사가 밀접한 관계였음을 시사한다. 현재 일제강점기 때 놓인 동해남부선 철로가 사천왕사지를 가로지르고 있다. 동해남부선은 올해 운행 중단이 예정돼 있다. 경주시는 폐선 후에 사천왕사의 본격적인 복원을 계획하고 있다. 사천왕사의 복원은 외세를 극복하고자 하는 호국정신의 회복이다. 이에 더하여 낭승 월명사가 제망매가를 통해 노래한 한국 정서의 뿌리를 되찾는 문학적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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