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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말자 호국보훈의 달
김진규 본지 취재본부장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06월 23일(수)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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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지난 6월 6일 현충일 영천 호국원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전몰 장병 묘에 꽃다발이 즐비하고 간간이 유족들의 통곡 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그날을’,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등 6·25전쟁 노래도 들렸다. 그것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을 잃은 어머니와 형제들이 한 맺힌 절규로 느껴졌다. 사실 6·25전쟁은 잊힌 전쟁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크고 깊은 상처를 남겼다. 증오와 원망의 길에는 두 개의 갈림길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보복과 복수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화해와 용서의 길이다. 보복과 복수의 논리는 나름대로 정당성을 가지고 있어 보인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법언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인정되어 왔다. 수많은 동서고금의 문학 작품들이 복수와 사랑을 테마로 쓰여졌다. 뿌리 깊은 사형제도의 논거도 복수의 논리에 터 잡고 있다. 국가 간의 전쟁도 복수의 다른 형태로 볼 수 있다. 문제는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부르고 그래서 복수의 악순환이 반복되는 데에 있다. 대표적인 예로 이스라엘과 아랍 민족 간의 끝없는 분쟁에서 볼 수 있다. 예루살렘 소재 조지 성당의 나임아택 신부는 팔레스타인 출신으로 각별한 생각의 소유자다. 그는 1948년 중동전쟁 때 이스라엘군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삶의 터전을 잃었지만, 결코 이스라엘인을 미워하지 않았던 아버지로부터 화해와 용서를 배웠다고 한다. 또 한 가지 사례는 미국 버지니아주 어느 작은 도시에서 지금은 평화롭게 살고 있는 존 플러머 목사의 이야기이다. 그는 1972년 베트남 전쟁이 한창일 때 군 헬기 조종사였다. 그는 ‘트랑방’이라는 마을에 네이팜탄 폭격을 가했다. 이 광경이 한 신문의 기사에 실렸다. 하늘로 솟구치는 검은 연기를 뒤로 하고 발가벗은 몸으로 겁에 질려 소리치며 달려 나오는 베트남 소녀 킴폭의 모습이었다. 참상은 전 세계에 전달되었고 고발의 효과는 컸다. 전 목사는 사건 후 24년간 줄곧 괴로운 삶을 보냈다. 그러다가 1996년 재향군인의 날에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식장에서 존은 극적으로 킴폭을 만나게 된다. 킴폭은 기념연설 말미에 뜻밖에도 자신은 이제 과거의 고통에서 자유로우며 마을을 폭격한 사람들을 모두 용서한다고 말했다. 6·25전쟁 당시 국군은 물론 유엔군의 희생도 컸다. 미군은 장성 이상의 아들만 142명이 알지도 못하는 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참전하여 그중 35명이 전사하거나 큰 부상을 입었다. 이때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아들 존 아이젠하워 육군 중령, 유엔군총사령관 클라크 대장의 아들 빌 육군 대위, 해병1사단장 해리스 소장의 아들 해리스 소령 등이 그들이다. 이것은 우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외면하지 않고 큰 도움을 준 우방에 대한 우리 국민의 진심 어린 감사의 표현이 절실하다. 아직도 끝나지 않은 6·25전쟁. 그날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 세계에서 유일한 부산 유엔군묘지에도 해외 참전용사들의 고귀한 영령이 대한민국의 수호신이 되어 6·25를 맞이할 것이다. 자유수호와 세계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다시 기리며 다음과 같이 다짐해 본다. ‘원망은 물에 흘려보내고 은혜는 돌에 새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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