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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종교
정석준 수필가/ 법사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06월 02일(수)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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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종교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그리스의 철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social animal)’이라고 규정했지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이전에 종교적 동물이다. 그만큼 종교는 인간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고대의 동굴 벽화 또는 매장지 등을 살펴보면 거의 예외 없이 그 당시 인간의 생활에 영향을 끼쳤던 종교의 흔적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서구의 중세에는 인간의 삶의 모든 부분이 종교에 의해 결정되다시피 하였다. 그때는 도덕, 윤리뿐만 아니라 인간 개인의 심리, 사회적 관습, 전통, 또는 정치, 경제 현상까지도 종교를 전제로 했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종교인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만나게 되고 여러 장소에 종교 시설물이 자리잡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의 어느 문화권이나 국가 체계 속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삶은 역사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늘 종교와 함께해 왔다. 그러면 왜 인간의 삶에는 늘 종교가 함께 할까? 그것은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써 오직 종교만이 채워 줄 수 있는 어떤 것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우리가 반드시 묻게 되는 ‘궁극적인 물음’에 대해 오직 종교만이 적극적인 해답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인간은 살아가면서 숱한 문제들과 만나게 된다. 그 중에서도 형이상학적 문제는 인간이라면 늘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위해 살다가 결국 어디로 가는가? 사후의 세계는 존재하는가? 이러한 문제들을 종교에서는 ‘궁극적 문제’라고 하거니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종교는 나름대로 답변을 제공하고 있다. 똑같이 궁극적인 물음을 묻고 있는 것으로 철학이라는 영역이 있지만 철학은 분명 물음만을 던졌을 뿐, 적극적인 해답을 제시하는 데는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오히려 그보다는 자신이 묻고 있는 문제가 정확하고 의미 있고 효율적인 물음인지를 되묻고 있다. 이에 비해 종교는 시작하는 순간부터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뚜렷한 답변이 있음을 적극적으로 주장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다른 어떤 곳보다도 가장 일반적으로 궁극적인 물음에 대한 답변을 종교에서 제공받게 된다. 따라서 종교는 인간의 삶과 늘 함께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지구상에는 하나의 종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종교가 있다. 그러나 이들 종교는 대체로 유신교(有神敎)와 무신교(無神敎)로 대별할 수 있다. 유신교는 다시 유일신교(唯一神敎)와 다신교(多神敎)로 구분 할 수 있는데, 유일신교로는 조로아스터교·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 등이 있고, 다신교로는 인도인들이 믿고 있는 힌두교와 일본인들이 믿고 있는 신교(神敎) 등이 있다. 유일신교 중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는 다 같이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는 한 뿌리에서 나온 종교이지만 신학적 견해 차이로 늘 반목과 갈등을 빚고 있다. 무신교〔無神敎, 人本主義的 宗敎〕로는 불교·유교·도교·천도교 등을 들고 있으나, 불교·유교·도교·천도교를 인본주의 종교라고 단정하기에는 이론(異論)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불교는 인간 뿐 아니라 일체중생과 모든 생명을 중시하는 종교이며, 유교 속에는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에게 있고 일을 성사 시키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謀事在人 成事在天)는 천명사상(天命思想)이 짙게 배어 있으며, 도교는 옥황상제 신앙이 있고, 천도교는 ‘한울님’을 사람을 초월하여 존재하지만 동시에 사람 속에 내재하는(侍天主) 그 무엇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종교는 신을 믿는 종교와는 다르게 인간을 중시하고, 인간의 역할과 책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넓은 의미에서 인본주의 종교라고 하여도 크게 어긋나지 않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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