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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核)무기 개발의 원죄, 삼중수소(Ⅲ)
정현걸 칼럼니스트, 소설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05월 31일(월)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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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1975년 박정희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면서 그 대가로 한반도에서의 주한미군과 핵무기의 철수를 막아냈다. 그 당시 대통령은 주한미군 철수를 저지하기 위한 협박 수단으로 핵 개발 기술력을 과장했다. 그래도 주한미군이 철수한다면 정말로 핵무기를 만들겠다는 사전 준비이자, 미국에 대한 일종의 시위였다. 1976년 4월 고리원전 1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이어서 1978년 9월 지대지미사일인 ‘백곰’이 6년 만에 완성돼 시험 발사에 성공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날아갈 수 있는 사정거리 180Km급 중장거리 미사일이었다. 세계 7번째의 미사일 생산국이었다. 여기에 핵탄두만 장착하면 화룡점정이 되는 것이다. 북한은 충격에 휩싸였고, 미국의 언론도 화들짝 놀라 ‘잠재적인 핵보유국’으로 보도하기까지 했다. 한국을 더 이상 자극하지 않기 위해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1979년 6월에 방한하여 자신의 대선공약이었던 ‘주한미군 철군론’을 사실상 백지화하면서 “한국이 방어용 핵우산을 원한다면 미군은 핵무기로 한반도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했다. 북한은 남한과 국방력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절박한 상황에 다다르자 ‘고난의 행군’까지 감수하며 핵 개발에 몰두하여 결국 성공했다. 그러자 한국도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다. 1976년 프랑스와 계약을 파기했지만 실제로는 핵심 기자재들을 다른 국방 장비들과 함께 숨겨서 반입하는 데 성공했다. 1979년 핵 개발이 80% 이상 완성됐지만 ‘10·26 사태’로 박 정권이 막을 내리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캐나다 정부는 미국의 압력으로 중수로 1기와 함께 끼워 팔기로 돼 있었던 실험용 원자로(NRX) 판매 협상을 중단했다. 중수로를 사줌으로써 플루토늄 생성용 연구로 등 여러 핵심기술을 얻으려던 한국의 계획은 수포가 되고 말았다. 온갖 우여곡절 끝에 1983년 경주시 양남면에 위치한 가압중수로형인 월성원전 1호기가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계속해서 월성4호기까지 건설됐다. 중수로라는 특징상 국제사회가 감시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완전히 죽어버린 연료봉이 아니라 가동 중인 연료봉을 인출한다. 국제원자력기구에서는 핵 개발 야심을 가진 나라가 중수로를 가지면 사용후핵연료를 몰래 빼내 플루토늄을 재처리해 내기가 쉽다고 판단하여 훨씬 엄중한 감시를 한다. 캐나다 원자력공사에서 개발한 가압중수로인 CANDU(CANada Deuterium Uranium)는 감속재, 냉각재로 중수를 사용한다. 중수는 경수(일반 물)와 달리 중성자를 잘 흡수하지 않아 연료로 천연우라늄을 넣어도 상관없다. 농축우라늄을 넣는다면 당연히 효율이 급상승한다. 거기에 운전 도중에 연료를 교체하는 것도 가능하다. 월성원전의 CANDU형 중수로는 캐나다 원자력공사가 인정한 정품이다. 이렇게 월성원전에서는 매년 준무기급 플루토늄이 생산되고 있고, 폐연료봉을 재처리하면 무기급 플루토늄을 얻을 수 있으며, 게다가 수소폭탄 제조에 필요한 중수소와 삼중수소도 상당량 확보하고 있다. 아무튼, 삼중수소는 한때 강대국들이 경쟁을 벌였던 ‘핵무기 개발’이라는 원죄가 낳은 골칫덩이이자, 보물덩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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