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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순례4 - 곧은 마음의 명을 받들어 부르는‘도솔가’
강병찬 본지 취재국장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05월 30일(일)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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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오늘 이에 산화(노래) 불러 / 뿌린 꽃아 너는 / 곧은 마음의 명 받들어 / 미륵부처님 모셔라.(이임수 현대역)” 월명사(月明師)가 지은 ‘도솔가(兜率歌)’는 국가의 유구한 안녕을 추구하기 위해 산화의식(散華儀式)을 행하고, 미륵좌주(彌勒座主)를 청하는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도솔가는 제의성(祭儀性)과 주술성(呪術性)이 명백하다. 4구체 향가로서 한시 5언절구를 연상케 한다. 도솔가는 당시 신라인들이 공감할만한 시송(詩頌)이다. 도솔가는 범패(梵唄)와 한시(漢詩) 시송과의 비교를 통해 향가의 성격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시경(詩經)에서의 ‘송(頌)’은 제사를 지내면서 부르는 노래다. 무가(巫家)와 연결돼 있고, 주술적인 성격이 있다. 그런데 중국의 시송을 본떠 지은 신라의 한시는 그러한 뿌리까지 인식할 수 없어 ‘천지의 귀신을 감동’시키지 못했다. 그래서 중국 시송의 주술적 기능을 신라에서는 한시가 아닌 향가가 맡았다고 연구된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경덕왕 19년 경자(庚子) 4월 1일에 해가 둘이 나란히 나타나 열흘 동안 없어지지 않았다. 하늘에 두 해가 나타났다는 것은 국가의 흥망이나 국왕에 대한 큰 변고를 의미한다.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인연이 있는 스님(緣僧, 연승)을 청해 산화공덕(散花功德)을 지으면 재앙을 물리치리라 했다. 이에 왕은 조원전(朝元殿)에 깨끗한 단(壇)을 설치하고, 왕이 청양루(靑陽樓)에 행차해 인연 있는 스님을 기다렸다. 그때 월명사가 논두렁(仟陌, 천맥) 남쪽 길을 가므로 왕이 그를 불러 단을 열고 기도문을 짓게 했다. 월명이 아뢰기를 “승은 국선도 (國仙徒, 花郞徒)에 속해 다만 향가를 알 뿐, 범패에는 익숙하지 못합니다”라고 했다. 왕이 이르되 “이미 연승으로 뽑혔으니 향가라도 좋다”고 하자 이에 월명사는 도솔가를 지어 바쳤다고 기록돼 있다. 월명사는 경주의 사천왕사에 머물렀다. 예악에 능한 스님이다. 그가 피리를 불 때 달이 잠시 멈췄다는 이야기는 그의 음악이 매우 높은 경지에 이르렀음을 말해준다. 가장 서정적인 향가로 사랑받는 제망매가(祭亡妹歌)의 작가이다. 그가 국선도 소속이므로 범패는 서툴고, 향가는 능하다는 답변으로 보아 향가가 신악(神樂)사상과 밀접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향가의 주된 향유층이 화랑이었음을 시사한다. 도솔가의 명칭과 관련, 불교의 도솔천(兜率天)은 고대인도 불교적 세계관에서 천상(天上)의 욕계(慾界) 중 네 번째 하늘나라이다. 도솔천의 내원(內院)은 석가모니가 남섬부주(南贍部洲, 인간세계)에 내려오기 전에 머물던 곳이다. 현재는 미륵보살이 지상에 내려갈 때를 기다리며 머무르고 있다고 한다. 외원(外院)은 천인(天人)들이 모여 행복과 쾌락을 누리는 곳이다. 덕업을 쌓고 불심이 깊은 사람만이 죽어서 도솔천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하며, 문학세계에서는 ‘이상향(理想鄕)’으로 간주된다. 도솔가에 나타난 월명사의 국태민안을 위한 해법은 충담사의 안민가와 사뭇 다르다. 안민가가 맹자의 통치철학을 구체적으로 대변했다면, 도솔가는 순수한 불교적 기원을 표현했다. 산화 의식, 곧은 도, 미륵좌주는 불교적이며, 표면에 추상적인 상징성만 내포하고 있다. 형식이 4구체에 그친 것은 짧고 쉬운 시송으로서 백성들이 두루 부를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월명사는 우연히 반월성 부근을 걸어오다가 왕과 신하 무리의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왕의 부탁을 정중히 거절하는 모습을 보였다. 속세를 떠난 구도자의 굳은 자세가 느껴지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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