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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심이문(一心二門) (1)
정석준 수필가, 법사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05월 26일(수)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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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우리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六根), 즉 눈(眼)·귀(耳)·코(鼻)·혀(舌)·몸(身)·뜻(意) 이, 모양(色)·소리(聲)·냄새(香)·맛(味)·감촉(觸)·뇌수(法)의 여섯 가지 인식대상(六境)과 마주치면, 좋다(好), 나쁘다(不好),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平)는 세 가지의 느낌을 갖는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좋은 데서는 즐거움을 느끼고(樂受), 나쁜 데서는 괴로움을 느끼며(苦受),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데서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감정을 느낀다(不樂不苦受). 이와 같이 우리의 6근은 여섯 가지 식의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서른여섯 가지 감정이 일어나며, 이 서른여섯 가지 감정은 과거에도 일어났고,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고, 미래에도 일어날 것이므로 모두 합하면 108가지가 된다. 그래서 108번뇌라 하며, 이 번뇌 망상이 마치 죽 끓듯 일어나 고통 속에 헤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마명보살은「대승기신론」에서 우리의 한마음에는 두 가지 문[一心二門], 즉 생멸문(生滅門)과 진여문(眞如門)이 있다고 했다. 생멸문이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마음의 측면을 말한 것인데, 이 생멸문이 바로 대상에 따라서 온갖 마음을 일으키는 중생심이다. 진여문이란 우리의 본래 마음으로써, 이 마음은 맑고 청정하다하여 청정심(淸淨心), 부처님의 성품과 같다고 하여 불성(佛性), 여래의 씨앗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서 여래장(如來藏), 이 마음이 나의 참된 주인이라고 해서 주인공, 이 자리는 무엇이라고 이름 붙일 수 없다 하여 ‘이 뭣고’ 등으로 부르고 있지만, 마음의 참된 모습을 언어로 설명할 수가 없다. 따라서 대승기신론에서는 진여를 ‘언어를 떠난 진여’ 라고 하였다. 생멸문과 진여문은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별개의 마음이 아니라 마치 바닷물과 파도의 관계와 같은 것이다. 바닷물이 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파도요, 파도는 바닷물을 떠나서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파도와 바닷물은 둘이 아니다. 또 거울이나 푸른 하늘과도 비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의 본바탕은 맑고 푸르다. 그러나 때때로 힌구름·뭉개구름·먹구름이 낄 때도 있지만, 맑고 푸른 하늘의 본바탕은 변함이 없다. 여기서 말고 푸른 하늘은 우리의 본래 마음이고, 구름 낀 하늘은 생멸심이다. 여기 거울이 하나 있다. 이 거울은 본래 맑고 깨끗했다. 그런데 이 거울에 때가 묻고 먼지가 끼면 물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코가 둘로 보이기도 하고, 한쪽 눈은 작고 다른 한쪽 눈은 크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때가 묻었다고 해서 거울이 아닌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맑고 깨끗한 거울이 우리의 진여심이라면, 때 묻고 먼지 낀 거울이 생멸심이다. 때 묻고 먼지 낀 거울도 깨끗이 닦아내면 맑고 깨끗한 거울이 될 수 있듯이 우리 중생도 열심이 수행정진하면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본래 마음을 찾기 위한 수행법으로 간경·염불·주력·참선 등 여러 가지가 있다. 불교의 수행법이 이렇게 다양한 것은 중생의 근기(수준)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 나는 어떤 방법으로 수행을 하면 좋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내 근기, 내 수준에 맞는 수행법을 찾으면 될 것이다. 참선 수행법에도 관법·묵조선·간화선 등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관법(위빠사나)은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조용히 관하는 수행법이고, 묵조선은 일체의 사량(思量)과 분별을 끊고, 고요히 앉아서 마음을 묵묵히 한 곳에 집중하여 닦는 수행법이며, 간화선은 화두를 참구하는 수행법이다. 화두란 말씀 화(話)자, 머리 두(頭)자, 즉 ‘말의 머리’란 뜻으로, 화두에 의심을 일으키고 정신을 집중시켜 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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