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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무생사(本無生死)(2)
정석준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03월 25일(목)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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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이렇게 뭐든지 묻는 대로 다 있다고 답변을 했다. 그러니까 선비는 다시 질문을 했다. “스님께서 지금 말씀을 잘못하고 계신 게 아닙니까?” “나는 잘못 말하는 것이 없습니다.” “실은 며칠 전에 경산선사를 찾아뵈었는데, 경산선사의 말씀이 본래 천당도 없고, 지옥도 없고,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고,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모두 없는 것이다. 참다운 진리에는 본래 이런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모두 다 있다고 말씀하시니 이것이 어찌된 일입니까?” 이에 서당 지장선사는 다시 질문을 하였다. “경산스님한테 상투가 있었습니까?” “스님에게 무슨 상투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그러면 당신에게는 상투가 있습니까?” “저에게는 상투가 있습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경산선사에게는 상투가 없고 당신에게는 상투가 없습니다. 경산선사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을 해서 생사와 천당 지옥이 모두 없는 세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모두 없다고 한 것이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아직 그 세계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당신에게는 생사와 천당 지옥이 그대로 다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우리는 깊은 진리를 체달해야 한다. 생사의 고통은 본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생사가 없는 진리를 깨닫지 못한 중생은 전도(顚倒)된 생각[無明〕으로 말미암아 업(業)을 짓고, 그 업으로 인하여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 속에 해매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꿈속의 일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삶과 죽음은 모두 꿈이다. 꿈속에서는 분명히 태어나고 죽는 일이 있으나 진리의 세계에는 본래 나고 죽음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사의 꿈속에서 하루빨리 깨어나야 한다. 옛날부터 득도한 분들이 모두 생사에 자재(自在)함은 그 경지가 이미 생사를 초월했기 때문이다. 3조 승찬대사는 법회를 마치고 방에서 쉬다가 떠날 때가 됐음을 알고 바깥으로 나서 뜰을 거닐다가 나뭇가지를 잡은 채 임종했다. 경통은 스스로 장작더미에 올라앉자 불을 붙이고 소신(燒身)공양을 했다. 당나라 등은봉 선사는 어느 날 제자에게 “내가 앉아서 돌아가신 스님은 많이 보았다. 서서 돌아가신 스님도 있더냐?”하고 물었다. 제자가 “서서 돌아가신 스님도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러면 거꾸로 서서 돌아가신 스님도 있더냐?” 고 되물었다. 제자가 “그런 스님은 아직 못 보았습니다”하고 대답하자 “그르면 나는 거꾸로 서서 입적해야겠다”라고 하면서 물구나무서기 한 채로 입적했다.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스님은 법상에 올라가 백문백답(百聞百答)을 마친 뒤 “나 그만 갈란다”고 하시며 열반하셨다. 20여 년 전에 돌아가신 성철스님을 화장을 하니 사리가 130여과가 나왔을 뿐만 아니라, 다비하던 날, 한 밤중에 성철스님이 머무르고 계시던 백련암에는 오색 무지개가 일곱 번이나 나타나, 당시 여성동아 등 잡지에서 특집으로 보도한 바 있는데, 이러한 현상은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죽음이 범인들에게는 공포와 불안으로 다기오고 있으나 본래 생사가 없는 진리를 체득한 분들에게는 아무런 거리낌이 되지 못한다. 그들은 죽음을 마치 낡은 옷을 벗어 던지고 새 옷으로 갈아입듯 태연하게 죽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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