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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사고와 대진랑기념비(大津浪記念碑)
정현걸 칼럼니스트, 소설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03월 15일(월)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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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경북연합일보 | |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지 어느덧 10년이 지났지만 사고는 현재 진행형이다. 사고의 후유증과 후폭풍은 여전하고 아직도 삶의 터전에 돌아가지 못한 주민들이 부지기수이다. 이 사고는 원전사고 최상위인 7등급의 대재앙이었다. 요약하자면 천재지변과 인재(人災)가 결합할 때 일어나는 사고가 얼마나 치명적인지 여실히 증명해준 사고였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이 사고가 천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천재(天災)라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곧 이 주장이 뒤집혔다. 후쿠시마 제1원전 원자로들이 자동 정지된 것 자체는 대지진과 대형 쓰나미 때문이지만 ‘동시다발 노심 용해’란 대재앙으로 악화한 것은 명백한 인재(人災)였음이 밝혀졌다. 조사위원회 보고서에 의하면, 후쿠시마 제1원전은 지진에도 쓰나미에도 취약한 상태였다. 또한 사고 발생 뒤에도 총리 관저나 규제 당국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피해를 키웠고, 도쿄전력 본사도 사고 발생 초기 늑장 대응으로 사고를 키웠으며, 현장 지원도 불충분했단 결론을 내놨다. 국제원자력기구도 사고 조사보고서에서 ‘쓰나미의 위험을 과소 평가했고 중대 사고에 대한 대비가 불충분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도쿄전력 측의 ‘안전불감증’도 사고발생에 일조했다. 일본 원자력안전기반기구 보고서에 따르면 ‘쓰나미 규모별 영향’에서 해발 13m에 이르는 방파제가 없는 경우는 7m 이상의 쓰나미가 닥치기만 해도, 그리고 15m 이상 쓰나미라면 이런 방파제가 있건 없건 거의 100%의 확률로 멜트다운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실제로 후쿠시마 제1원전의 원자로 건물은 높이가 10m, 방파제는 높이가 6m여서 결국 3·11대지진 당시 후쿠시마 제1원전에 무려 15m의 쓰나미가 들이닥쳐 13기 비상용 디젤발전기 중 12기가 망가졌으며, 원자로 냉각 파이프가 손상되는 등의 타격을 받아서 멜트다운이 급속히 진행됐던 것이다. 후쿠시마 사고는 바로 ‘설마 하는 마음,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여실히 증명해 준 본보기다. 인간들의 요행심에 ‘최악의 대규모 방사능 누출 사고’라는 재앙으로 철퇴를 내렸다. 일본의 한 해안도로에 ‘대진랑기념비’가 있다. 일명 ‘쓰나미 스토운’이다. 그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이 비석보다 낮은 자리에는 절대로 집이나 창고를 짓지 말라. 쓰나미의 위력은 대단한 것이다. 높은 곳에 사는 것이 우리 자신들은 물론, 후손들의 조화롭고 안전한 삶을 위해 중요하다” 일본 메이지 시대에 이미 15.5m의 지진해일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고, 위의 비문처럼 후손들에게 당부하는 ‘쓰나미 스토운’이 아직 남아 있다. 그런데도 일본의 후손들은 조상들의 경고와 당부를 거역했고, 실제로 2011년의 대형 쓰나미 때 그 비석이 있는 바로 도로 밑까지 쓰나미에 의해 휩쓸렸다. 후쿠시마 제1원전의 1∼4호기 부지도 10.2m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여지없이 14∼15m높이 대형쓰나미로 인해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것이다. 원전선진국이라고 자처하던 일본은,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경종을 울리기 위해 세워둔 ‘대진랑기념비’ 마저 무시한 채 지진이나 쓰나미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예방대책도 제대로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큰 재앙을 초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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