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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원리
정석준 수필가, 법사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03월 04일(목)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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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경북연합일보 | | 봄이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뜨락의 백목련이 벙긋 꽃을 피웠다. 꽃이 피니 봄이 오는 것인가 봄이 오니 꽃이 피는가. 목련 옆에는 라일락이 봉오리를 맺고 있다. 며칠 있으면 진한 향기를 뿜으며 화려한 개화를 하겠지. 목련과 라일락이 서 있는 밑엔 이름 모를 풀꽃의 새싹이 돋아나고 있다. 풀꽃은 굳이 넓은 공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뿌리 내릴 만큼의 땅만 있으면 그것으로 자족한다. 옆에 덩치 큰꽃나무가 땅을 조금 많이 차지했다고 결코 시기하지 않는다. 꽃나무도 생존을 위한 최소 공간만 확보하면 더 이상 욕심 부리지 않는다. 그들은 결코 자신의 행복을 위해 대지를 독점하겠다는 욕심은 부리지 않는 것이다. 풀꽃은 풀꽃대로, 꽃나무는 꽃나무대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우리는 다시 한번 신묘한 자연 섭리에 감탄을 금치 못하게 된다. 이 세상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고있다. 사람과 사람은 서로 상의상자(相依相資)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누구도 단독자로서는 존재할 수 없다. ‘너’와의 관계에 의해서만 ‘나’는 온전하게 존재할 수 있다. 너와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윤택해지기도 하고 피곤해지기도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맺는 관계가 언제나 편안한 것만은 아니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집단, 집단과 집단의 관계는 이해가 엇갈리고 대립과 갈등이 수없이 반복된다. 떡 하나를 놓고 누가 먼저 먹느냐로 으르렁 대기도 하고, 두 남자를 놓고 한 여자가 미묘한 줄 당기기를 하기도 한다. 세계의 정치 체계는 동서의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종교 분쟁의 문제로 옮겨 가기도 한다.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관계와 관계, 세상은 실로 중중무진연기(重重無盡緣起)의 바다이다. 누구에게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가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어떤 사람은 어릿광대가 줄타기를 하듯 아슬아슬한 곡예를 연출하며 잘도 출세의 일직선을 달리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중간에서 실족하거나 아니면 아예 줄타기를 포기하는 일조차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도 세속적 욕망이 전제된 관계란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늘 불편과 불안이 상존하기 마련이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고른 화음을 내지 못하는 건 무슨 까닭인가? 여러 가지 답이 있을 수 있겠지만 가장 본질적인 것은 관계속의 인간이 ‘관계의 원리’를 잊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관계의 원리란 한마디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사는 곳이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은 ‘나’와 ‘남’이 모여 이루어진다. 나와 남은 언제까지나 하나가 될 수 없는 이질적 존재들이다. 서로 다른 존재끼리 사는 곳이기에, 한 존재가 무엇을 독점하면 반드시 다른 존재로부터 강한 반발을 받게 된다. 따라서 모든 존재는 자신이 주장하는 것만큼 남도 인정해야 한다. 이 평범한 관계 원리를 무시하고 나만 잘나고 나만 잘 먹고 나만 잘 살려고 할 때, 불협화음(不協和音)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 관계의 원리가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사람들은 모두 더불어 살기를 원치 않고 혼자만 살려고 발버둥 친다. 혼자만 살려고 할 때 관계의 원리는 무너지고 양육강식의 ‘힘의 원리’가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 우리가 정말 행복해지길 원한다면 다툼과 갈등을 극복한 ‘새 인간지평(人間地坪)’을 열 필요가 있다. 풀꽃과 꽃나무가 자기 세계를 지키면서도 서로 조화롭게 사는 것처럼 인간의 삶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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