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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선생이 추구한 나눔과 민생의 실학
김진규 본지 취재본부장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02월 24일(수)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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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경북연합일보 | | “개혁이 아니면 죽음이 있을 뿐이다” “지금 당장 개혁하지 않으면, 나라가 필시 망하게 된다.” 얼핏 듣기에 어느 순국열사의 피맺힌 절규 같기도 하지만 실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저서 속에 자주 등장하는 경고 메시지이다. 다산(1762-1836)은, 그가 살았던 조선 후기의 사회가 총체적으로 부패하고 병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는 대표작 ‘목민심서’ 머리말에서 “요즘의 사목이란 자들은 이익 추구하는 데만 급급하고 어떻게 목민해야 할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곤궁하고 병들어 죽어가도 그들은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 배만 살찌우고 있으니 어찌 슬픈일이 아니겠는가!”라고 탄식했다. 후일 사가들은 이 시대를 삼정(三政)이 문란했던 ‘사도 정치 60년’으로 기록하고 있다. 다산은 39세의 나이에 참소를 당해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그 해 6월 그를 아끼던 정조가 갑자기 죽고 이듬해, 천주교가 빌미가 되어 신유옥사를 겪었다. 경상도 포항 장기로 유배됐다가, 다시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되어 18년 간의 귀양 살이를 하게 되지만 그는 자신의 운명에 결코 좌절하지 않고, 시대의 아픔을 학문적 성취로 승화시켰다. 다산은,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의 이름 답게 정치, 경제, 역사, 지리,문학, 철학, 의학, 군사학, 자연 과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방대하고 혁혁한 저술을 남겼다. 사서육경이 연구물인 경학서 232권, 일표이서(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를 포함한 경제학서 138권과 시문집 등 160권을 합쳐 모두530여권에 이르렀다. 다산은 자찬 묘지명에서 “사서육경으로 심신을 수양하고 일표이서로 천하와 나라를 다스리니 이로써 본과 말을 갖추었다”고 회고했다. 다산은 원목(原牧)이라는 글에서 “목민관은 백성들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라고 언명하고 필연적인 개혁이 수반되는 나눔과 민생의 실학을 정립했다. 다산은, 밑바닥으로 추락한 소작인과 소농, 소상공인들의 비참한 삶의 현실을 주목했다. 권력과 부를 양손에 거머쥔 지방관들의 갑질과 가렴주구가 극에 달해서 정당한 몫의 사회 관계를 일그러뜨리고, 민생의 파탄을 불러왔다. 이는 다산의 비판적 현실인식은 기실 당시의 지배 계층인 조정군신 전체를 겨냥한 준엄한 경종이었다. 경제 제도의 모순을 제거하기 위해서 ‘경자유전의 원칙’에 입각한 여전법(閭田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오늘날 빈부의 격차와 사회 양극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론, 초과이익 공유제와 전관 예우문제 등이 당면 정책 과제로 활발하게 논의가 되고 있는 요즈음, 다산의 나눔과 실학 사상은 그 시사점이 크다고 하겠다. 현 정부가 집권초기 경제 살리기에 집중한 후 중기 이후에 접어들어 나눔과 민생을 표방하는 정책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 점은 옮은 방향설정이라고 본다. 다만 충분한 사전검토와 숙려가 부족했던 점과 개혁 추진 세력에 대한 국민의 불신 등으로 소기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여야가 다산(茶山)이라는 큰 개혁의 물결위에서 같은 배를 타고 사단법인 한국정책포럼 창립이념이기도 한 ‘통일된 녹색복지국가’ 달성을 위해 함께 전진하는 대동화합의 날이 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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