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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매정 연가(財買井 戀歌)
강병찬 본지 취재국장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02월 14일(일)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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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경북연합일보 | | 반월성 높은 성루에 어둠이 내리고 횃불이 켜졌다. 구중궁궐 임금님은 만수무강하신지? 오늘따라 굳게 닫혀 대답조차 없는 성문이 야속하다. 재매부인(財買夫人)은 사립짝을 열고서 밖으로 나섰다. 한 길가 문천(蚊川)에는 별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전장에 나간 낭군은 몸 성한지? 속절 없는 세월이 흘러가는 강물에게 물었다. 늦은 비 내렸다가 마지막 낙엽이 떨어졌다. 오동지섣달, 흰 눈이 삭풍(朔風)에 흩날리던 밤이었다. 재매부인이 마루에 올라서서 두 귀를 기울였다. 매서운 북풍한설(北風寒雪)이 부엉이 두 귀를 얼렸다. 계절이 지나가고 새해가 돌아왔다. 부엉이는 잠이 들었다. 뜸부기가 울던 날이었다. 춘풍타고 황성(黃城)에 태평소(太平簫)가 울려퍼졌다. 병사들이 개선가(凱旋歌)를 높이 부르며 열을 지어 돌아왔다. 적마(赤馬)를 탄 낭군은, 번쩍이는 투구를 쓰고 비늘철갑을 입고 선봉(先鋒)에 있었다. 춘양교(春陽橋)를 건너던 낭군이 보검(寶劍)을 높이 들고 적마를 박차(拍車) 했다. 그러자 온 병사들이 병장기를 흔들면서 함성을 질렀다. 병사들은 순식간에 반월성으로 들어가 버렸다. 재매부인은 낭군과 재회하지 못했다. 입궐할 때 입고 가는 보라색 장포(長袍)조차 전하지 못했다. 그날 오후 재매부인은 마당을 쓸고 마루를 윤기나게 닦았다. 온갖 음식을 손수 차렸다. 길가에 흐드러진 봄꽃도 한 아름 따왔다. 봄꽃으로 신방(新房)을 꾸몄다. 오늘 밤은 낭군 품에 안기리라 상상을 했다. 그러나 그날 해질 녘 서쪽 하늘에 먹구름이 덮였다. 물러났던 외적이 또 다시 들이닥쳤다는 소식이 화급히 날아 왔다. 낭군은 임금님께 “한달음에 전장으로 달려가서 적군을 물리치고 나서 안민가(安民歌)를 부르겠습니다”라고 맹세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장수와 병사 그 누구도 자기 집으로 가지 못했다. 석양이 내리고 있었다. 병사 가족들이 옷과 음식이 든 보따리를 들고서 문천가에 삼삼오오 늘어섰다. 재매 부인과 식솔들도 사립짝에 나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재매부인은 행여나 낭군과 눈이라도 마주칠 수 있을까하고 지나가는 대오(隊伍)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지만 낭군을 태운 적마는 앞으로만 발걸음을 내달았다. 야속하기 그지없었다. 병사들은 너나 없이 보따리를 전해 받았다. 그러는 사이 대오는 어느새 오십 보(步) 너머로 멀어지고 있었다. 재매부인의 두 눈에는 눈물이 그득하게 고였다. 천 길 낭떠러지 위에서 발밑으로 지나가는 구름 위를 걷듯 눈앞이 온통 흐려졌다. 갑자기 정신이 혼미해졌다. 재매 부인의 몸은 갈대처럼 흔들렸다. 그때 갑자기 항오(行伍)가 멈췄다. 고개를 들자 대오의 선봉을 보였다. 낭군이 적마를 탄 채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재매부인은 집으로 달려갔다. 마당 한가운데 있는 우물에서 물을 길었다. 우물물을 바가지에 담아 전했다. 물을 마신 낭군은 “우리 집 물맛이 여전히 좋구나”라고 말했다. 그제야 재매 부인의 눈에는 물기가 걷혔다. 얼굴이 환해졌다. 재매부인은 “모든 병졸들이 임전무퇴(臨戰無退)로 이룩할 삼국통일도 우리 집의 물 맛 때문이리라”라고 나직하게 읊조렸다. 재매 부인의 남편은 신라 흥무대왕(興武大王) 김유신(金庾信)장군이다. 김유신 장군의 집은 금으로 담장을 둘렀다는 ‘금입택(金入宅)’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장군의 집을 굳이 ‘재매정택(財買井宅)’이라고 이름 붙여 불렀다. 재매정은 경주 교동에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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