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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부처님 나라를 지상〔서라벌〕에 옮겨놓다 (2)
정석준 수필가, 법사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02월 04일(목)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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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경북연합일보 | | 이곳의 왕인 제석천은 4왕천과 33천을 통솔하며 불법과 불법에 귀의하는 이들을 보호하고,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다고 한다. 야마천(夜摩天)은 도리천 위에 있는 하늘 나라이며, 도솔천은 야마천 위에 있는 하늘 나라이다. 이 곳에는 내외의 2원(二院)이 있는데, 외원은 천인들의 욕락처가 되고, 내원은 미륵 보살의 정토로서 미륵 보살은 이곳에 있으면서 남염부주에 하강해 성불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는데, 석가모니 부처님 께서도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는 이곳 도솔천 내원궁에서 천인들을 교화하고 계셨다고 한다. 화락천(化樂天)은 도솔천 위에 있는 하늘로써, 5욕의 경계를 스스로 변화해 즐기기 때문에 화락천이라고 이름한다.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은, 화락천보다 더 수승한 하늘로 욕계 중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제일 수승한 하늘세계이다. 이 세계는 남의 즐거움을 자유롭게 자기의 쾌락으로 삼기 때문에 이렇게 이름한다고 한다. 3계 중 욕계는 이 타화자재천에서 끝난다. 그리고 경에 의하면 남녀의 구별이 있는 것도, 혼인하는 일이 있는 것도, 여기까지라고 한다. 이 이상의 하늘엔 남녀의 구별도 없다고 하니 혼인하는 일도 있을 수 없다. 색계(色界)란 앞의 욕계가 중생의 모든 탐욕을 주로 하여 이룩된 세계이고, 다음의 무색계가 순 정신적인 세계임에 비하여 모든 탐욕은 여의었으나, 아직 순 정신적인 것은 되지 못한 욕계와 무색계의 중간의 세계로, 욕계의 상층에 있다고 한다. 무색계(無色界)란 무색정(無色定)을 닦아 태어나는 하늘로 순전히 정신적인 세계이며, 삼계 중 가장 수승한 곳이라 한다. 무색계 4천은 순전히 정신적인 세계이며, 이에는 공무변처천‧식무변처천‧무소유처천‧비상 비비상처천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형태의 3계는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한 단위로 하여 이의 일천 배를 소천 세계(小千世界)라고 하고 이 소천세계를 천배한 것을 중천세계(中千世界), 중천세계를 천 배한 것을 대천세계(大千世界)라 하며, 이 소‧중‧대를 합하여 ‘3천 대천세계 (三千大天世界)’ 라고 한다. 부처님은 이러한 세계가 “갠지스 강에 있는 모래만큼의 갠지스강들이 있고, 이 갠지스 강들에 가득찬 모래 수만큼의 부처의 세계가 있다(금강경)”라고 하셨으며「법화경」<여래수량품>에서는 우주의 크기를 ‘5백천만억 나유타 아승지 3천 대천세계’라고 묘사하고 있다. ‘나유타’ 라는 말은 <구사론>에 의하면 51개의 0이 붙은 숫자이며, 아승지란 산수로 표현할 수 없는 가장 많은 수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나유타 아승지의 삼천대천 세계에 대한 풀이는 다종 다양하나 최근 천문학에서 밝혀낸 바와 비교해 볼 때 상당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일연 스님이 쓴「삼국유사」에 의하면 우리 민족의 국조인 단군의 아버지가 환웅(桓雄)이며 환웅의 아버지가 환인(桓因)인데 아들인 환웅이 자주 천하에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욕심내는 걸 알고는 “널리 인간세상을 이롭게 하라 (弘益人間)” 고 하며 천부인(天符印) 3개를 줘 묘향산(古記에는 태백산) 신단수(神檀樹) 아래로 내려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일연스님은 환인을 가리켜 ‘위제석야(謂帝釋也)’라고 주석을 달아 환인이 바로 도리천의 왕인 제석천임을 밝히고 있다. 도리천〔제석천〕신앙은 일연스님이 살았던 불교 국가 고려 시대에는 매우 성행했던 것으로 보아진다. 최근 건국대 김기홍 교수가 신라사를 개관한「천년의 왕국 신라」를 통해 첨성대는 인간 세상과 하늘 세상을 연결하는 수미산 정상의 도리천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주장해 학계에 큰 반향(反響)을 일으킨 바 있는데, 선덕 여왕의 지기삼사 (知幾三事)라는 고사(故事)에서도 신라시대 역시 도리천 신앙이 널리 유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선덕 여왕의 지기삼사(知幾三事)는「삼국사기(三國史記)」와「삼국유사(三國遺事)」에 함께 전하고 있는데, 그 중 한 가지가 여왕이 자신이 죽을 날과 더불어 훗날 사천왕사가 자기 무덤 밑에 설 것을 미리 알았다는 것이다. 선덕여왕이 건강할 때였다. 하루는 여러 명의 신하들을 불러놓고 당부하였다. “내가 모년 모월 모일에 죽을 것이니 나를 도리천(忉利天)에 묻어 달라” 신하들이 그곳을 알지 못하여 하는 수 없이 여왕에게 도로 물었다. “도리천이 어디옵니까?” “낭산 남쪽이니라” 세월이 흘렀다. 여왕은 과연 예언했던 그 해, 그 날, 그 시(AD 647년 1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 신하들은 여왕의 영명함에 놀라며 낭산에 장사를 지냈다. 그 후 30년이 지나, 문무왕 (文武王) 때에 사천왕사가 낭산기슭 여왕의 무덤 아래 서게 되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한 여왕의 뜻을 알게 되었다. 불경에 이르기를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고 했으니, 사천왕사가 낭산 아래에 건립되었으므로 그 위가 도리천이 되는 것으로, 이는 여왕이 죽어서 도리천으로 승천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어머니가 마야왕비였고 선덕여왕의 어머니 역시 마야 왕비였다는 점, 석가모니의 어머니가 죽은 뒤 도리천에 왕생하였고(佛經) 선덕 여왕이 “내가 죽거든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한 것을 보면, 당시 신라인들의 이상향(理想鄕)은 도리천이었음을 알 수 있고, 청운교‧백운교의 33계단은 이러한 염원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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