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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를린 먼로의 서재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1년 01월 21일(목)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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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전인식
시인 | | ⓒ 경북연합일보 | 20세기 최고의 여배우를 꼽으라면 누구라 할 것 없이 마를린 먼로를 떠올릴 것이다. 당대를 통틀어서도 그녀를 넘어설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마를린 먼로하면 지하철 환풍구 바람에 들춰지는 치마를 붙잡는 모습이 떠오른다. 영화 ‘7년 만의 외출’ 속 장면이 그녀를 대표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빨간 입술, 풍만한 가슴과 잘룩한 허리, 약간은 감기는 듯한 눈의 그녀를 두고 사람들은 ‘영원한 섹스 심볼’, ‘백치미의 대명사’ 등으로 그녀를 표현한다. 여기서 백치미란 한마디로 ‘머릿속이 텅 빈 금발의 백인 미녀’ 이미지로 해석된다. 이러한 이미지는 죽을 때까지 따라다녔다. 아마도 고아원 생활과 중학교도 제대로 졸업하지 못한 학력, 이른 결혼과 배우 생활에 따른 고정관념과 편견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생아였고 미성년자인 어머니는 정신질환까지 있었기에 어릴 적부터 고아원 생활을 전전했다. 16살에 고아원을 탈출하는 목적으로 제임스 도허티와 결혼하였다. 남자가 2차 대전에 징집되어 간 사이 밥벌이 목적으로 50달러를 받고 카렌다 누드모델을 하였는데 이 사진이 한 장이 그녀의 운명을 바꾼 계기가 되었다. 섹스 어필이 먹혀들었을까 단역배우로 시작해서 서서히 승승장구의 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 ‘이브의 모든 것’ ‘신사는 금발을 좋아한다’ ‘백만장자와 결혼하는 법’ 등 찍는 영화마다 성공을 거두면서 그녀를 히로인으로 만들었다. 잘룩한 허리와 풍만한 가슴을 강조하는 여성의 관능미에 포커스를 맞춘 영화들이 많았다. 허리 골반을 흔들며 걷는 먼로의 걸음을 두고 ‘먼로 워크’ 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른 결혼은 일찌감치 깨어지고 인기 절정을 달릴 무렵 그녀는 12살 많은 메이저리그 출신 조 디마지오와 결혼을 발표한다. 그는 뉴욕 양키스 출신으로 56경기 연속 안타 신기록을 가지고 있는 메이저리그의 전설이었다. 언론은 최고의 육체와 최고의 육체가 만났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일본으로 신혼여행 떠날 때부터 삐걱거렸다. 이유는 한국 주둔 미 군부대 위문공연 때문이었다. 조 디마지오는 제의를 거절하기를 바랐지만, 그녀는 한국공연을 수락하고 마는데 나흘 동안 서울 대구 인제등 열 곳을 돌며 공연을 했다. 추운 겨울날 제대로 된 시설도 없는 전후의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성심껏 공연해준 먼로에게 사람들은 열광했다. 당시 그녀가 찾아간 강원도 인제에 먼로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일 이후에 조 디마지오와의 관계는 틀어졌고 상습적인 손찌검 등을 이유로 결국 일 년도 못가 끝났다. 그녀의 세 번째 남편은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극작가 아서 밀러였다. 그는 풀리처상을 두 번이나 탄 거물이었다. 언론은 그들을 두고 ‘위대한 육체와 위대한 두뇌의 만남’이라고 흥분했다. 먼로에게 아서 밀러는 남편이자 한편으론 스승이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삶이 극명하게 나눠지면서 사랑도 점점 멀어져 결국 4년 7개월 결혼생활을 끝으로 각자의 길을 갔다. 이외에도 먼로는 여러 유명한 인사들과 염문을 뿌렸다. 프랑크 시내트라, 이브 몽땅, 과학자 아인슈타인, 특히 존 F 케네디와의 연애 스캔들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케네디와는 그가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도 밀회와 정사를 즐겼다. 수위를 넘어선 사랑은 FBI 등 정보기관의 개입으로 냉정을 되찾은 그가 돌아서자 먼로는 올라가지 못할 나무를 쳐다본 충격으로 신경쇠약과 수면제 과다 복용등 불면증으로 몸이 망가져 갔다. 1962년 8월 5일 새벽, 수화기를 든 채 침대 위에 죽어있는 그녀 사망 소식을 토픽으로 전 세계로 전해졌다. 밑바닥에서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녀의 사생활에만 관심 많았던 사람들은 사후에 공개된 그녀의 서재의 책들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녀의 서재에는 수준 높은 인문 서적들로 가득했다. ‘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커트)’ , ‘까라마조프의 형제들(도스토옙스키)’ , ‘위대한 개츠비(피츠제럴드)’ , ‘무기여 잘 있거라(어니스트 헤밍웨이)’ , ‘사랑의 기술(에리히 프롬)’ , ‘꿈의 해석(프로이트)’ ,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릴케)’ , 이외에도 마르셀 프루스트, 토마스 울프 등의 책들이 있었다. 특히 놀랄만한 것은 ‘율리시스(제임스 조이스)’가 백미였다. ‘율리시스’는 20세기 문학작품 중 가장 어려운 작품으로 영문학자들도 평생을 이 책을 연구할 만큼 난해한 책이다. 끝까지 읽은 사람도 드물뿐더러 이해한 사람은 거의 없다. 본인도 젊은 시절 책을 집어 들었으나 바로 내려놓고 말았다. 언젠가는 꼭 읽어야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아직도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문학가 중에서도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 어려운 책을 먼로는 수시로 들고 다니며 읽었다. 특히 단 8개의 문장으로 된 율리시스의 마지막 50쪽을 큰소리로 달달 외우며 율리시스를 자신의 연기 교본으로 삼았다. 사람들은 율리시스를 그녀가 폼으로 들고 다니는 정도로 알았다. 도스토옙스키의 책을 읽을 때에도 기자들은 먼로에게 도스토옙스키의 철자를 알고 읽느냐고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죽기 전까지 대부분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먼로는 말했다 “다른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논하지 마세요. 보이는 게 다는 아니니까요” 그렇다. 우리는 너무 외형만 보며 살아왔다. 사회적 격리시대는 책 읽기 위한 좋은 기회이다. 평소에 읽고 싶었던 책을 읽다 보면 코로나 없는 계절에 당도해 있을 것이다. 틈틈이 책을 읽자 마를린 먼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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