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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죽음
정석준 수필가, 법사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12월 03일(목)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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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경북연합일보 | | 공자의 가르침은 다른 성인들의 그것에 비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공자가 영원의 문제에 대해 외면했다는 사실이다. 공자는 죽음을 문제삼지 않았다. 공자는 중병을 앓았을 때 기도해 보자는 자로의 청을 한마디로 거절했다. 신을 문제삼지 않고 영혼의 존속을 문제삼지 않은 공자에게 있어서는 기도할 상대도 없는 것이었다. 공자에게는 이 현실사회에 도(道)를 실현하면 되는 것이었다. 죽음이나 죽은 다음의 존속여부 같은 건 처음부터 문제 밖이었다. 공자가 보인 관심은 예에 맞게 죽고 묻히는 일이지 영혼의 문제같은 것은 아니었다. 자로가 어느 날 스승에게 “감히 죽음에 대해 묻고자 합니다”하고 질문하자, 공자는 “아직 생(生)에 대해서도 모르거니와, 어찌 죽음을 알랴”라고 대답했다. 이것도 죽음을 문제삼지 않은 점에서 같은 태도라 할 것이다. 그것은 “감히…” 라는 말에서 느껴지듯 자로가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을 했는가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 묻는 것은 공자의 학도답지 않은 행위다. 그러므로 편찬자는 “감히”라는 말을 붙였을 것이다. 「논어」에는 공자가 앓았다는 기사는 나오지만 어떤 모양으로 죽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안 보인다. 이것을 다른 성인의 경우와 비교해 볼 때 절대자와 죽음을 문제 삼지 않은 것이 그의 커다란 특징임을 알게 된다. 다른 모든 성인의 경우, 그 전설을 추구해 거슬러 올라가면 마지막에 가서 부딪히는 것은 그들의 죽음임에 틀림없다. 그들은 모두 자기 가르침의 핵심이 되는 독특한 죽음을 죽은 것으로 되어있다. 예수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죽음은 인류의 구제를 의미했다.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이 된 것은 이 때문이다. 석가에 있어서도 영원으로서의 각자(覺者)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는 것은 바로 열반(涅槃)과 해탈을 인류 앞에 나타내 보이는 일이었다. 적어도 대승경전의 경우, 이런 뜻을 그의 죽음은 가지고 있었다. 소크라테스도 도망해서 살아갈 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부정한 판결에 복종함으로써 그 윤리적 각성의 증거로서 독배를 마셨다. 이런 성인들의 죽음은 모두 자유로운 자기선택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어서, 그 제자들에게 강한 감동을 줬다. 그리하여 그 생전의 가르침이 이 죽음을 매개로 하여 도리어 강하게 살아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이런 성자들의 전기가 그 죽음의 의의를 대서특필한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물론 성인들의 최후는 그들이 속해 있던 문화가 다르듯 각각 그 양식을 달리하고 있다. 석가의 죽음은 제자들에게 에워싸인 속에서 마지막 설법을 마치고 극히 고요히 진행됐다. 예수의 죽음은 종교적 증오에 불타는 군중 속에서 극히 잔인하게 집행됐다. 전자가 목가적이요 평화로웠던 데 비해, 후자는 비극적이요 음산한 인상을 풍긴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석가처럼 목가적도 아닌 반면, 후자처럼 음산하지도 않았다. 제자들에게 에워싸여 고요히 죽은 점은 전자와 비슷했다 해야 할 것이고, 정치가의 미움이나 민중의 반감에 의해 죽게 된 점은 예수를 닮았다. 그리고 그의 현저한 특징은 이처럼 증오에 에워싸여 있으면서도 그 죽음이 폴리스의 재판에서 명랑하게 공개적으로 국법에 의해 결정됐다는 점일 것이다. 이렇게 다른 성인에 있어서는 그 죽음이란 중대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공자의 죽음은 어떤 결정적 구실도 하지 못하고 있음은 다른 성인들과 비길 때 아주 특이한 일로 생각된다. 그리고 이것도 그의 가르침이 절대자를 문제삼지 않은 점에서 나왔음은 논할 필요조차 없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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