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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설과 명작 사이-채털리 부인의 사랑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11월 18일(수)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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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전인식 칼럼니스트 | | ⓒ 경북연합일보 | |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영화나 소설로 통해 우리에게 익숙하게 다가온다. 야한 소설로, 야한 영화로 소개되어지다 보니 호기심 많은 사춘기 시절에 본인 또한 소설과 영화를 일찌감치 접한 기억이 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별로 야한 축에도 못 끼는 수준이었지만 이 책이 출간 당시의 시간으로 되돌아 가보면 논쟁의 중심 한가운데 서 있었고, 이 책이 흘린 눈물의 내력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작가가 사망하기 2년 전인 1928년도에 출간되었다. 노골적이고 거침없는 성적 묘사와 불경스러운 비속어 사용 등으로 자국인 영국에서는 출판 거부를 당하고 피렌체에서 자비로 이태리어 번역본으로 출판되었다. 작품은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며, 불과 한 달도 안 되는 사이 이미 미국에서 불법 해적판이 출현할 만큼 눈 깜짝할 새였다. 미국과 영국 세관 당국에서는 책을 몰수하였고 판매금지 조치가 내려졌지만 책은 해적판의 복사본까지 나돌며 전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말았다. 출판 금지로 인해서 합법적으로 책을 출판하지 못하는 사이 해적출판업자들의 배만 불려주고만 셈이었다. 형편없는 작품으로, 외설 작가로 버림을 받았고 출판의 이득 또한 얻지 못했다. 외설 시비로 레지오 펭귄출판사의 떠들썩한 법정 싸움은 30년이 지난 다음에서야 비로소 암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미국의 법원은 1960년 6월 22일에 ‘책은 성적표현이 나머지 부분을 침수시킬 정도로 압도적이지 않기 때문에 외설적이지 않다’라고 판결을 내렸다. 뒤따라 영국에서도 그해 11월 2일에 무죄를 선고받자 영국의 신문들은 1면 톱으로 기사를 싣기도 했다. 외설에서 명작으로 옷을 바꿔 입는 날이었다. 책은 이미 불법 해적판으로 전 세계인들이 다 돌려보고 난 한참 뒤의 일이었다. 소설 작가로서는 불명예를 회복하였지만, 제 때에 출판을 하지 못한 재산상의 손해를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 양녀는 ‘책도 피눈물을 흘린다’ 라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에로티시즘의 고전 또는 대명사로 일컬어진다. 단순히 줄거리로 보면 남녀의 불륜을 다룬 이야기이며 지나치게 성적 인 묘사 부문이 많다 보니 외설적으로 여긴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작품을 잘 들여다보면 성적인 표현은 일종의 메타포로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이질적인 두 사람의 남녀를 통해 영국의 사회의 단상을 은유적으로 표현함을 알 수 있음을 소설의 첫 문장에 있다. ‘우리 시대는 본질적으로 비극적이다’ 라고 시작한다. 소설에 있어 첫 문장은 보통 그 소설의 방향을 제시한다고 보았을 때, D.H 로렌스도 이 책에서 성을 통해 전후의 시대 상황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전쟁의 참혹함과 산업화로 인한 물질 만능주의의 몰 인간화, 계층 간의 갈등, 황폐화되어가는 내면의 상실감 등을 소설에서 내포하고자 했다. 주인공으로 가정 주부 코니와 그의 연인 산지기 멜러스로 설정하고 있다. 상층 여자와 하층 남자, 자연스런 성의 추구에서 그 탈출구를 찾고자 했다. 소설 속에서 산지기 남자가 코니에게 한말인 ‘차디찬 가슴으로 하는 것은 무의미 공허한 것이다. 따뜻한 가슴으로 하는 성행위야말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부드러운 애정과 공감, 즉 살아있는 접촉을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다’ 이 맞는 말인 것 같다. 작가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 금기시 하였던 성 문제를 다룬 문학 작품들이 등장하게 된 것은 프로이트의 영향이 컸다. D.H 로렌스는 본격적으로 성 문제를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킨 대표적 작가였다. 이후 헨리 밀러 <북회귀선>이 음란물 여부로 판매금지와 소송전으로 이어졌던 예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9년 박승훈 교수의 음란물 죄 구속을 필두로 염재만의 <반노>, 마광수의 <즐거운 사라>, 장정일의 <내게 거짓말을 해 봐> 등이 국내에서 음란물로 구속되거나 기소된 대표적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음란의 개념이 축소되어가고 있고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어가고 있다. 형법을 비롯한 기타 법률로 의해 작품을 구속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예술의 자유를 침해할 여지가 있다. 따라서 개입하더라도 최소한으로 개입하는 것이 마땅하다. 명작과 외설 사이는 얼핏 보면 한끝 차이일 수도 있다. 단순히 성적 소재를 했다고 해서 외설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 미적 형상화의 유무에 따라서 외설과 예술로 구분된다. 어디까지 예술적인 작품성을 가질 때에만 유효하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오랜 시간이 지나서 누명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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