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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의 매력(魅力)
정석준 수필가, 법사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10월 15일(목)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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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정석준(수필가, 법사) | | ⓒ 경북연합일보 | | 「유마경」경은 구성이 희곡처럼 딱 짜여 있는데다가, 전편이 아이러니한 대화로 메꾸어져 있어서, 아주 흥미진전한 바가 있다. 그리고, 주인공인 유마는 승려가 아닌 속인이다. 여기에 불교를 사원으로부터 해방하려는 대승정신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이라 하겠다. 그는 매우 지혜있는 인물로서 집안은 부유하고 처자식도 있는 몸이다. 그는 완전히 속인이다. 장사도 하고 권력자들과 접촉하며 술집에도 가고 도박도 한다. 그러나 그는 욕심에 끌려서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그의 마음은 공(空)의 경지에 머물러 있어서 결코 세속의 더러움에는 물드는 법이 없다. 그런데 마침 유마는 며칠째 병으로 누워 있었고, 사건은 그의 병을 중심으로 해서 전개되어 간다. 이 병이 이 경의 주제다. 부처님은 그를 문병하기 위해 제자들을 지명한다. 그러나 누구도 선뜻 응락하는 자가 없었다. 그들은 과거에 유마를 만났다가 되게 당한 일이 있는 까닭이다. 가령, 부처님 제일의 제자라는 사리불은 이러한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언젠가 나무 밑에 앉아 좌선하고 있을 때, 유마가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대덕 사리불, 당신이 하는 방식으로 좌선을 해서는 안 됩니다. 몸도 마음도 삼계(三界) 중에 나타나지 않도록 좌선을 해야 합니다. 정(定)에 든 채 행(行)·주(住)·좌(坐)·와(臥)가 나타나도록 좌선을 하십시오. 이미 획득한 성자로서의 모습을 버리지 않으면서, 그러면서도 보통 범인의 성격도 나타내는 식으로, 좌선을 하십시오. 당신의 마음이 안에도 없고, 바깥의 물질로도 달리지 않도록 좌선을 하십시오…번뇌를 끊지 않은 채, 열반에도 들어갈 수 있도록 좌선을 하십시오.” 이런 말을 듣고, 사라불은 그만 어안이 벙벙하여, 반격할 엄두도 못 냈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도 다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부처님은 보살들을 차례차례 지명했다. 그러나 그들도 같은 사정에 있었기 때문에, 누구하나 나서지를 못했다. 그들이 유마와 주고받았던 문답은 참으로 이채로운 바, 지면 관계상 <유마경> 본문에서 읽어 주시기 바란다. 그리하여 마지막으로 지명된 문수보살이 문병을 가기로 하였다. 문수는 지혜의 보살이다. 처음부터 문수가 지명된다면 싱거워지니까 마지막으로 돌린 것이다. 작자의 얄미울 정도의 문학적 솜씨다. 문수와 유마의 대결을 구경하기 위해 8천의 보살과 6백의 나한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따라 나섰다. 이때 유마는 일부러 방을 비우고, 문수를 맞았다. 물론 공(空)의 상징이다. 구라마습의 한역(漢譯)에 의하면, 문수를 맞은 유마는 이렇게 말을 꺼냈다. “어서 오라, 문수여. 당신은 온다는 모습(相) 없이 왔으며, 본다는 모습 없이 보았다.” 문수는 공을 체득하고 있으므로, 모든 행동에서 분별지(分別智)를 떠났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문수를 따라 그 많은 사람들이 들어왔는데도 그 조그만 방은 조금도 좁아지지 않았다. 공에는 증감(增減)이 없는 까닭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유마의 병으로 옮아가 “중생이 앓는 까닭에 나도 앓는다”고 갈파했다. 중생이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고 있는 이상, 보살인 자는 자기 일신의 안온만을 탐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대자대비행(大慈大悲行)이라 하겠다. 그러면 그 병은 어찌하여 생겼는가? 유마의 언변은 도도히 흘러, 일체가 공임을 깨달을 때, 병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남은 병이 하나 있다. 그것은 ‘공이라는 병’이다. 소위 공견(空見)이다. 일체가 공이라는 생각도 집착이므로, 이것까지 버릴 것이 요구된다. 공하다는 생각도 공인 까닭이다. 여러가지 화제를 거친 다음, 불이(不二)의 법에 대해, 유마의 요구로 고제자와 보살들이 의견을 피력한다. 이를테면 A와 B가 존재한다고 할 때, A는 A 자체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B와 대립함으로 A일 수가 있다. 물론 B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A와 B는 완전히 같다고 할 수도 없고, 완전히 그 관계가 단절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A·B를 같다고 보는 건 악평등(惡平等)에 떨어진 생각이며, 다르다고 보는 건 범부의 소견이다. 불이(不二)라는 말은, 그 차별(二)을 인정하고 나서 다시 그것을 부정한 개념이다. A도 B도 독립 고유한 존재가 아니라, B와의 관계에서 A가 생기고 A가 있음으로써 B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결국은 일체는 연기(緣起)요, 공인 것이다. 그러므로 불이란 공의 다른 이름이라고 보아도 좋다. 마지막에 대답한 것은 문수보살이었다. 그는 말할 수도 없고, 말할 수 없다고도 할 수 없는 것이야 말로 ‘불이의 법문’이라 하고, 유마에게도 한 마디 하기를 청했다. 그러나 유마는 침묵한 채 한 마디도 말함이 없었다. 이에 문수보살은 감탄해 마지않았다. 자기는 공이 ‘언어를 떠난 것’이라 했으나, 그것도 또한 말이다. 말인 이상 이미 차별(二)에 떨어진 것이며, 불이는 아니다. 이에 비해 유마는 침묵으로 대답했다. 정말로 불이를 살려 보인 것이다. 이 ‘유마의 일묵(一默)’은 우레소리 같다 해서, 고래로 많이 회자돼 왔다. 대승불교의 모든 경전 중「유마경」이 우리에게 가장 큰 매력을 주는 것은 <유마경>의 뛰어난 문학적 특색뿐 아니라, 이 경(經)이 대승불교의 근본원리를 가장 명확히 파악하여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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