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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193호 ̒봉수형 유리병̓을 통해 본 인간미학
강병찬
취재국장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9월 10일(목)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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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사람들이 ‘깨진 유리병이 우리나라 국보라니’라는 의구심을 품고 있다가 ‘봉수형 유리병’(국보 193호)을 처음 마주하면, 그것이 내뿜는 신비로운 자태에 순식간에 매료되고 만다. 봉수형 유리병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쩍쩍 갈라졌던 것을 아슬하게 이어붙인 연녹색 몸통에서 내뿜는 광채가 은은하기 그지없다. 병의 주둥이 부분은 나팔잎 모양이다. 유리병이 유럽에서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주둥이가 봉황의 머리를 닮았다고 ‘봉수병(鳳首甁)’이라고 불린다. 주둥이와 목에 파란색 띠를 붙였다. 이러한 장식기법은 당시에 유행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압권은 역시 손잡이에 감긴 금실이다. 부러진 손잡이를 수리하기 위해 금실을 엮었으니, 유리가 황금보다 훨씬 귀하게 취급됐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다. 봉수형 유리병은 서기 5세기경 신라왕릉이라는 타임캡슐에 묻혔다가 경주시 황남대총에서 1970년대에 출토됐다. 1978년 12월 7일 국보 제193호로 지정됐다. 같이 출토된 유리잔 3점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병은 높이 25㎝·배지름 9.5㎝이고, 유리잔은 각각 높이 12.5㎝·입지름 10㎝, 높이 8㎝·입지름 10.5㎝, 높이 10.5㎝·입지름 9.5㎝이다. 경주사람들은 봉수형 유리병을 ‘로만 글라스’(Roman Glass, 로마식 유리병)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로만 글라스라기보다 ‘그릭 글라스’(Greek Glass, 그리스식 유리병)로 인정하고 있다. 그리스의 오이노코에(Oinocoe)라고 불리는 유리병과 형태가 거의 유사하다. 시리아 등 동부 지중해 주변에서 주로 만들어졌는데 비단길과 바닷길을 통해 유라시아 대륙을 건너 신라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한다. 경주 98호 고분(황남대총)에서 출토된 봉수형 유리병은 발견 당시 1500년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잘게 조각나 있었다고 한다. 그것을 문화재 전문가들이 원형을 거의 완벽하게 복원해 보존처리를 했다. 소장자인 국립중앙박물관은 본관 1층 신라관 등에 내진장치까지 해서 수시로 전시하고 있다. 그러나 경주사람들은 미래의 어느 날 봉수형 유리병을 전달받아 황남대총 인근의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오는 꿈을 꾼다. 문화재는 제자리에 있어야 그 가치가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 봉수형 유리병을 가만히 보노라면, 깨진 유리병도 원형대로 잘 붙이고 고이 감싸서 귀하게 다루면,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신비감이 더해지면서 멀쩡한 것보다 그 가치가 더 높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에서는 대개 사람은 고쳐서 쓰지 않는다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이 말은 인간성에 대해 모르고 내뱉는 혐오스러운 말이다. 인간은 성장하고, 늙어가면서 각종 질병과 사고, 혹은 사회관계 파탄으로 몸만이 아니라 마음 상태도 크게 다치면서 살아 간다. 그런 사람을 고쳐서 재기하도록 돕지 않고, 각종 레이스에서 배제하겠다는 발상은 대단히 위험한 인간성 상실과 인간성 혐오의 논리로 비약될 가능성이 크다. 오늘 우리가 잘게 깨어진 로만 글라스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붙여 고이 보존하면서 형용하기 어려운 신비감을 느끼는 것처럼, 완벽하지 못한 사람들을 실체 그대로 고이 존중하는 것을 참된 인간사랑이라는 말로 표현해도 무방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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