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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텃밭
한순희 경주문인협회 회장. 전 경주시의원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9월 09일(수)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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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아침 운동 중에 만난 어린 새들이 싱그런 바람을 맞으며 새집 앞에 나와 지저귄다. 아기도 보채야 돌아보던 기억 때문에 소리의 장단이 가슴에 비집고 들어온다. 새소리를 핑계 삼아 걸음을 멈추고 고즈넉한 들녘의 풍경을 미풍으로 맞이한다. 서늘하고 상쾌한 따뜻한 봄바람을 등지고 앉아 있으니 서걱서걱 호미 질 하는 소리에 잊고 살았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떠 오른다. 어린 날의 우리집 텃밭에는 자연이 주는 야외냉장고가 있었다. 그곳에는 반찬을 하기 위한 모든 싱싱한 재료를 보관하고 있었다. 아버님은 호미와 낫질을 하시지 못했기 때문에 조그만 텃밭하나 가꾸는데도 온 가족이 동원되었다. 여러 종류의 푸성귀는 정성들인 만큼 식탁을 풍성하게 해주었다. 가뭄에는 사람보다 더 목마르다는 신호를 보냈고 영양이 부족하면 환자처럼 부실부실하게 말라갔다. 텃밭에서 성실함을 배웠고 가꾼만큼 배신하지 않는 정직함을 배웠다.시골에서 자라 도회지에 살며 느낀 불편함이 그런 텃밭이 없는 것이었다. 옆 냇가에는 물 오리떼 두쌍이 깃털에 숨겨온 비밀을 풀어 놓는다. 나도 나이를 먹었나봐. “나이를 먹으니 산이 좋아지고 두렵고 무섭던 무덤이 정겨워 보인다”던 돌아가신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난다. 오랜 시간을 품어온 들녘의 풍경에서 포만감이 온다.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아도 각도에 따라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자연은 오묘하다. 경주시 공무원 노동조합 회원들이 행복 농장 텃밭을 분양 받아 자신의 이름을 걸고 가꾸는 들녘이 카메라에 잡힌다. 밭에는 여러 종류의 채소들이 저마다 맵시를 뽐내며 미인대회를 하고 있다. 갈 길 바쁜 태양도 고랑 마다 시간의 실 꾸러미를 풀어 놓으며 한 뼘 한 뼘 미소를 뿌리고 있다. 느리게 품어 나오는 사색의 공간에는 새근새근 숨을 쉬는 정겨운 이야기가 도란도란 들리는 듯 하다. 흰 꽃은 흰 꽃끼리 연두는 연두끼리, 주인장의 정성에 따라 같은 종류의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사람들도 각각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듯 제각기 자기의 역할을 하려 땅을 움켜 쥐고 있다. 뿌리가 얕으면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쓰러지니 뿌리가 깊어야 한다고 말해 주고 싶다. 나처럼 귀가 얇으면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고 유혹에 넘어가서 후회한단다. 길위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것이 꿈이기도 하지만 꿈을 이룬 내가 누군가의 꿈이 되는 것처럼 농부 아닌 농부들의 경쟁심도 볼 수 있다. 갓 심은 어린 새싹들은 폭염과 장대비에도 굳건하게 자라야지. 우리 인생도 가늘고 긴 길이 있고 또한 굵고 짧은 길이 있단다.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지만 속상해 할 성공은 없다. 나는 매일 행복농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오늘도 하늘의 미소로 생각이 녹음처럼 짙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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