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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흘린 신라 왕자, 김교각 스님의 눈물
강병찬(취재국장)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9월 02일(수)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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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산을 내려가느냐 - (김교각 지음) “고요한 절 한나절 하도 길 때면 먼 산 바라고 옛집 그리더니 / 함께 머물던 흰 구름 떠나 산을 내려가느냐 / 난간에 뛰어올라 죽마 타던 아이야 / 이곳은 황금 땅 부처님 나라, 금모래 모으는 일도 이제 싫냐 / 칠 병 속 시냇물엔 밝은 달 찾아올 일 없겠고 / 차 달인 단지에는 향긋한 꽃 필 일 없겠네 / 부처님 그리는 이는 자주 울 일 없나니 / 노승은 노을의 벗 노을은 노승의 벗” 送童子下山(송동자하산) - (金喬覺 作) 空門寂寞汝思家 禮別雲房下九華 (공문적막여사가 예별운방하구화) / 愛向竹欄騎竹馬 懶於金地聚金沙 (애향죽난기죽마 나어금지취금사) / 漆甁澗底休招月 烹茗遼中罷弄花 (칠병간저유초월 팽명구중파농화) / 好玄不須頻下淚 老僧相伴有煙霞 (호현불수빈하루 노승상반유연하) 중국 당시집(唐詩集)에는 김교각(金喬覺, 서기 696년~794년) 스님의 시가 두 편 실려 있는데, 수혜미(酬惠米)와 소사미하산(少沙彌下山)이다. 그중 소사미하산이 송동자하산으로도 일컬어지는 차시(茶詩)다. 당시집에 다수의 시가 수록된 고운 최치원 선생이 서기 857년생이니만큼, 차시는 우리나라 현전하는 최고(最古)의 한시가 된다. 이 시의 배경은 호랑이한테서 구해 준 고아 아이가 절에서 살다 적막함을 못 이기자 시 한 수를 지어 마을로 돌려보내면서 짠한 마음을 소박하게 묘사했다. 그러나 속세를 떠난 고승의 시라기엔 너무나 짙은 그리움이 묻어 있다. 생기발랄하던 아이가 불현듯 떠나자 달이 빛을 잃고, 꽃도 시든다는 것은 부모의 마음과 다름이 아니다. 고아 거지 아이를 친 자식처럼 여긴 이 고승은 신라의 왕자였다. 그는 속세를 떠났지만, 속세에 대한 연민은 부처와 다름이 아니다. 왕권마저 티끌 같았던 그에게 아이의 마음이 그토록 소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그는 끝끝내 아이를 돌려보내며 자신만이 가슴을 찢고 눈물을 흘렸다. 아이가 비록 잘못된 판단과 결정을 했더라도 그의 '자유'를 꺾지 않는다. 끝까지 설득하며 기다릴 뿐이다. 그를 중국인들은 '지장(地藏)'이라 불렀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불에게 "지옥이 텅 비지 않으면 성불(成佛)을 서두르지 않겠나이다. 그리하여 일체의 중생이 모두 제도되면 깨달음을 이루리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지옥에 몸소 들어가 죄지은 중생들을 교화, 구제하는 지옥세계의 부처님으로 신앙된다. 예나 지금이나 현실은 지옥 같은 것이 민중의 삶이다. 민초에게는 천상의 하느님보다 현세의 지장보살이 참된 힘이 되고 의지가 된다. 삼국사기의 기록을 참조해 볼 때, 학계에서는 김교각 스님을 서기 697년 신라 제32대 효소왕 4년 서라벌 궁궐에서 태어난 김중경으로 파악한다. 따라서 그의 아버지는 제33대 성덕왕(재위 서기 702~737)이다. 서기 701년 김중경의 나이 4세 때 32대 효소왕을 대신해 섭정을 하던 신목왕후가 암살되고, 몇 년 후 효소왕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자 김흥광이 왕위에 오르니 33대 성덕왕이다. 이후 김중경이 화랑이 되었을 때 친모 성정왕후와 성덕왕 사이에 후궁 문제로 갈등이 일어나자 그는 세속의 생활에 환멸을 느끼게 된다. 그는 721년 24세의 나이로 신라를 떠나 당나라 건너가 불교에 귀의했다. 김교각 스님의 법명은 석지장(釋地藏)이다. 야사에 의하면 왕권을 잇게 하려고 모후가 그를 찾았다가 출가를 되돌릴 수 없어 대성통곡했다는 대목도 있다. 그는 황립도(黃粒稻)란 신라의 볍씨를 가지고 삽살개 한 마리와 함께 돛단배를 타고 당나라에 갔다고 전해진다. 당에서 그는 각지를 돌며 구도생활을 하다가 양쯔강 남쪽 구화산(九華山)에 암자를 짓고 수도에 전념했다. 스님은 화엄경(華嚴經)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불교이론을 설교했다. 공덕이 높아 제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뤘고, 중국 각지는 물론 신라에서까지 많은 사람이 찾아와 설교를 듣곤 했다. 인근에 살던 부자 민양화(閔讓和)와 아들 도명(道明)은 그의 설교에 감화돼 백성들을 모아 화성사(化城寺)를 짓고 구화산을 지장도량의 성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99세의 나이로 열반에 들었다. 3년 후 불교도들은 그를 등신불로 모시고, '대승대집지장십륜경(大乘大集地藏十輪經)'에 근거해 지장보살의 현신(現身)이라 믿어 '김지장(金地藏)'이라 불렀다. 경주에서는 2017년 11월 9일 아당 채숙자 명창의 수제자이자 영제시조·시창보존회장인 김영리 명창이 ‘등신불이 된 신라왕자 김교각’을 경주예술의전당에서 창극으로 공연해 갈채를 받았다. 그때 비로소 알려진 김교각 스님의 시가 수혜미이다. 1226년 전 등신불이 된 김교각 스님은 지금까지도 속세와 불문(佛門)을 잇고, 종교와 학문을 잇고, 한국과 중국을 잇는 가교역할을 든든히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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