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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와 종교
정석준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8월 31일(월)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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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현대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중요한 원리 가운데 하나는 정치와 종교의 분리이다. 정교(政敎)분리의 원칙은 유럽식 민주주의 국가 대부분의 헌법에 명시돼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다. 헌법 제20조 2항은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고 선언하고 있다. 사실 이 조항은 서유럽 민주주의 국가들의 헌법 체계를 들어오면서 다소 형식적으로 삽입된 것이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종교는 유럽에서 만큼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중세 이후의 유럽 사회는 교권과 황권 또는 교권과 왕권 사이에 여러 차례 권력다툼이 발생했다. 그리고 시민혁명으로 절대 군주나 귀족 계급이 몰락한 뒤에도 교회는 의연히 힘을 잃지 않고 세속에 간섭해 왔다. 프랑스 혁명은 귀족의 날개를 단숨에 꺽어 버렸지만, 교회는 귀족계급보다 더격렬하게 혁명에 저항했다. 1789년의 대혁명에서 시작해 1830년의 7월 혁명, 1848년의 2월 혁명, 그리고 1871년의 파리코민을 거쳐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제3공화국의 ‘아름다운 시절(벨, 에포크)’에 이르기까지 프랑스 혁명의 기나긴 장정은 정치나 교육같은 세속의 영역에서 교회의 입김을 제거하는 과정이기도했다. 동유럽의 옛정권이 무너지기 시작한 1989년 이후, 체제로서의 사회주의에 대한 믿음을 지닌 사람은 크게 줄었다. 그러나 사회주의가 떠나버린 그 자리를 채운 것은 민족주의와 종교적 열정이었다. 지금의 동유럽에서 종교는 뚜껑을 내동댕이치며 상승하는 증기 에너지다. 이슬람권의 많은 사회에서는 아직도 정교 분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공화정(共和政)을 택하고 있는 이란 같은 나라가 역설적으로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완고한 신정(神政)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이슬람권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세속의 일이 흔히 종교에 포섭돼 있다. 그러나 정교분리가 깊이 뿌리내린 듯이 보이는 사회들이라고 해서 종교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예컨대 미국 대통령은 손을 성경 위에 얹고 취임 선서를 하고, 성직자들을 초대해 기도를 올린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도 이따금 조찬기도회라는 걸 올리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이혼이 합법화 된 것은 겨우 10년 전이다. 그 사회의 일상사를 지배하고 있는 가톨릭교회의 힘 때문이다. 로마 교황청은 지금도 낙태를 합법화하지 못하도록 가톨릭 국가의 정부에 압력을 행사한다. 이슬람 국가들이나 서방의 기독교 국가들에 비해서 종교로부터 더 독립적으로 보이는 한국 사회에서도 종교는 여러 가지 양상으로 세속의 일에 간섭하고 있다. 실은 세계 여러 곳에서 수입된 종교들이 한국에서는 기묘하게도 근본주의적 성격을 띠게 돼, 다른 종교들에 대해서, 또는 그 종교 내부에서 심하게 충돌한다. 단군상의 목이 잘리거나 불상이 훼손되는 일도 자주 발생한다. 특정한 교파나 그 교파 지도자의 부패나 여타의 일탈행위를 보도하는 언론기관은 흔히 신도들의 물리적 공격 목표가 된다. 21세기 첨단 과학시대를 사는 오늘날에도 종말론은 고개를 숙일 줄 모른다. 이런 것들은 일부 이단 종파들의 종교적 일탈일 뿐 정통교파의 종교라는 것은 본디 거룩하고 너그러운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기독교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 교회의 역사는 피로 얼룩진 역사이다. 십자군 전쟁이나 신ㆍ구교간의 전쟁은 기독교의 역사의 수많은 피흘림 가운데 두드러진 예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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