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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불교의 믿음, 무엇이 다른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8월 11일(화)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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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경북연합일보 | | 어떤 철학자가 말하기를 “믿음이 있으면 종교요, 믿음이 없으면 철학이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믿음은 종교의 생명이며 본질이다. 불교도 물론 믿음이 있으며, 믿음을 강조하고 하고 있다. 그런데 유일신을 믿는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등〕와 불교의 믿음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기독교에서‘하느님’, ‘예수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과 같이 불교에서는 ‘부처님’, ‘보살님’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신앙대상에 대한 인식〔자세〕는 사뭇 다르다. 기독교의 여호와 하나님은 오직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유일신이며, 스스로 존재하는 분[自存者]이며, 천지만물의 창조자이며, 천지를 운행하고 인류의 역사와 인간의 운명을 주관하는 분이며,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전지자(全知者)이며, 그 능력이 한량없는 전능자(全能者)이며, 알파요 오메가로 영원히 계시는 영원자(永遠者)이며, 언제 어느 곳에나 아니 계신 곳이 없는 무소부재자(無所不在者)이며,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로,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메시아[救世主]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과 그 독생자 예수님을 믿고 따를 때, 살아서는 소원을 성취하고 죽어서는 영원한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주장하며, 무조건적인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러한 창조신이나 주재신(主宰神)을 인정하지 않는다.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 부처님은 신(神)이 아니라 우리와 똑 같은 인간으로 태어나(부처님은 카필라국 정반왕의 태자로 태어났다), 사문유관(四門遊觀)을 통하여 인생의 덧없음을 느끼고 ‘생사일대사(生死一大事)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왕궁을 나와, 6년 고행 끝에 마침내 ‘아뇩다라 삼막삼보리(위없는 바른 깨달음)’를 얻으시고, 팔십 평생을 중생구제를 위해 몸 바친 분이며, 보살님들은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구제에 애쓰는 수행자들이다. 불자들이 부처님과 보살님을 믿고 따르는 것은, 그 분들의 덕(德)과 행(行)을 본받고, 가르침(敎)에 따라 열심히 수행·정진하여 나도 보살이 되고 부처가 되고자 함에 있지 다른데 뜻이 있는 것이 아니다. 다음 이야기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와 불교의 믿음이 어떻게 다른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부처님께서 죽림정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박칼리라는 부처님 제자가 어느 옹기장이의 집에서 중병으로 앓아누워 있었다. 그는 도저히 회복될 가망이 없음을 알고 병을 간호하던 친구에게 죽기 전에 부처님을 한번 뵙게 해달라고 부탁하였다. 친구는 박칼리의 부탁을 받고 부처님을 찾아가 그 사정을 여쭈었다. 부처님은 그를 따라 도공의 집으로 박칼리를 찾아갔다. 박칼리는 부처님의 예방을 받고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 예배하려고 하자 박칼리를 그대로 눕히면서 말씀하셨다. “박칼리야 그냥 누워 있거라. 그래, 견디기가 힘 드느냐?” “부처님 저는 회복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부처님을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박칼리야. 나의 이 늙은 몸을 보고 예배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그대는 이렇게 알지 않으면 안 된다. 법(진리)을 보는 자는 부처님을 보고 부처님을 보는 자는 진리를 보아야 한다.”(상응부 박칼리경)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병든 제자를 찾아가 문병하는 부처님의 모습도 감동적이거니와 자신에게 예배하는 것을 거절하며 ‘진리를 보는 자가 부처님을 보는 자’라고 가르침으로써 불교의 기본입장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고 있다. 거의 모든 종교는 신앙에 그 바탕을 두고 있고, 그것은 차라리 맹목적인 신앙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불교는 믿음이나 신앙이 아니라 ‘보고, 알고, 깨달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부처님께서는 최초의 제자가 된 5비구에게도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억지로 믿게 하려고 하지 않고, 그것을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줌으로써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입장은 그 이후 45년 간, 한결 같았음을 우리는 초기경전에서 엿볼 수가 있다. 부처님께서 어느 때 제자들에게, “너희들은 내가 말한 것을 내가 너희들 스승이기 때문에 믿는가?”라고 물었다. 그러자 제자들이 “아닙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면 왜 믿는가?”하고 부처님이 다시 물었다. 그 러자 제자들은 “그것은 저희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그 말씀이 의심할 수 없는 진리이기 때문에 믿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믿음은 강요할 수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을 강요로서 믿게 할 수는 없다. 이해함으로서 가지게 되는 믿음, 다른 말로하면 확신,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믿음(Sraddha)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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