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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와네트라는 이름의 여자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7월 15일(수) 17:52
↑↑ 전인식
ⓒ 경북연합일보
마리 앙투와네트를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은 부패하고 타락한 왕정과 핍박받는 시민들과 대립의 구조를 지닌다. 민중들의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의 반대편에 루이 16세와 왕비 마리 앙투와네트가 있다.
 혁명에는 누군가의 희생이 뒤따르기 마련이며 희생 없는 혁명은 없을 것이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시민의식이 싹틀 무렵 그녀는 태어났고 본인의사가 상관없이 왕비가 되었다. 그녀가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혁명의 큰 흐름은 피할 수가 없었다. 역사의 큰 강물에 빠져들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 자신이 누군 인지를 알게 되었다. '인간은 불행에 처해져서야 비로소 자기가 누구인가를 알게 됩니다' 그녀가 말년에 쓴 편지 한 구절이다.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여제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왕궁 안에서 세상 물정 모르고 자라났다. 오래도록 경쟁국이자 강국 프랑스와 동맹을 위한 정략결혼의 희생양으로 프랑스 루이 16세에게 시집왔다. 19세 어린 나이에 베르사이유 궁의 왕비가 되었다. 외부와 차단된 궁 안에서 왕족과 귀족 부인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들의 주된 대화 내용들은 음식과 의상 그리고 누군가의 뒷 담화였다.
 그녀의 사회적 역할은 왕위를 이을 왕자를 낳는 일 외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쉽게아이를 낳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문제가 아니라 남편 루이16세의 성기능 이상으로 우여곡절 끝에 무려 7년 6개월이 지나서야 첫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 그 이후 모두 네 명의 아이를 낳았다. 왕위를 계승할 왕자를 낳은 것은 11년만이었다.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다른 왕비들이 그랬던 것처럼 궁 안이 전부인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여타의 왕비보다 사치가 심하거나 타락하였거나 성격에 문제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나라 말아먹은 여자, 오스트리아 창녀, 빚투성이 왕비, 동성애자, 근친상간자등 민중들 사이에 나돌던 이런 말들과 '빵이 없으면 케익을 먹으라고 해요' 그녀가 했다는 이런 말들은 혁명의 공격표적이 필요했고 비난의 대상이 필요했던 민중들에 의해 가공된 말들이었다.
 개혁파들은 화가들로 하여금 그녀의 음란 팜플렛을 그리도록 했고 전국에 유포시키기도 했다. 혁명의 도화선 된 목걸이 사건의 내막도 알고 보면 누명과 오해가 뒤섞인 사건이었다. 그녀는 정치에 관심도 없었고 영향력을 행사할 그런 소질이 없었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철부지 소녀에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왕비가 되었고, 정치나 사회에 무관심했던 그녀는 드레스를 좋아하고 오페라를 좋아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고 그녀는 형무소에서 있을 때에도 아들의 양말을 만드는 일이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사형이 확정되자 하룻밤 사이에 그녀의 머리가 백발이 되었다는 이름하여 마리 앙투와네트 신드롬이라는 심리적학적 의학적용어가 태어나기도 했다.
 왕비로서 힘든 과정 끝에 아이들을 낳았고 혁명을 맞이했고 단두대에 목이 달아났다. 처형 되기 전 실수로 사형집행관의 발을 밟고 말았는데 '미안합니다 실수였습니다' 왕비의 언어가 아닌 순박한 시골 여인 같은 이 말은 그녀가 지상에서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아무렇게나 매장된 루이16세와 마리 앙투와네트 부부의 시신은 사후 22년 뒤에 발굴되어 왕족묘지인 생드니 성당에 안치될 수 있었다.
 그녀와 관련된 책과 영화나 뮤지컬은 수없이 많고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애니메이션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케다 리요코의 '베르사이유의 장미'를 빼놓을 수가 없다.
 그리고 소피아 코폴라 감독이 제작한 영화 '마리 앙투와네트'는 프랑스혁명이라는 역사적, 사회적 관점에서 보지 않고 한사람의 인간과 여성의 관점에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훗날 우리가 그녀를 언급하는 것은 단순히 왕비로서 혁명의 희생자로만 기억하는 그 이면에 마리 앙투와네트라는 이름의 한 여인으로 슬픔 또한 엿볼 수가 있다. 역사는 그녀에게 비극을 가져다주었고 비극은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고 있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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