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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택 씨 공직생활 퇴임 인생 2막 시작 , “농부 시인으로 살고파”
손때 묻은 옛 물건 소중히 담아낸 ‘우공이산’
문패대신 ‘경주시재난인명구조대’ 현판 걸고
각종 재난현장에서 구조활동 펼친 ‘멋진 삶’
농사 지으며 좋아하는 詩 쓰는 ‘특별보너스’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7월 09일(목) 18:11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퇴직을 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나라 고도 경제 성장기의 주역이었으며 한국사회의 산업화를 위해 앞만 보고 정신없이 달려왔다. 우리나라 베이비부머 세대는 1955~1963년 태어나 80년대 민주화운동, 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등의 사회경험을 공유한 집단을 일컫는다. 그들이 이제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전환점에 놓여 있다. ‘인생2모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되고 있다.
60대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는 기우택(60) 씨, 그는 지난달 30일 경주시 공무원으로 31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했다. 농부시인으로 공직생활을 할 때보다 더 바쁘게 하루를 달리는 그를 경주시 선도동복지센터 권향인 복지팀장과 함께 만났다.
그는 “퇴직을 전후로 위기는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인식의 전환과 깨달음, 학습과 성장, 일이나 활동을 통한 보람과 의미 추구 등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쓸모있음'과 '인정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생산적이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 기우택씨는 지난 6월 30일 공직생활 31년을 마감하고 자신만을 위해 만든 ‘우공이산’ 공간에서 농부시인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하고 있다.
ⓒ 경북연합일보
△개인 박물관, 옛 것에 대한 그리움

기우택 씨는 오래전부터 손때 묻은 옛 물건들을 소중히 여겼다. 사기접시, 놋그릇, 풍금, 워낭과 다양한 종들, 대추나무 다듬이, 고서적, LP 판 등 시간을 두고 하나하나 수집한 물건에는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 어머니의 유품인 다리미를 만지는 기우택 씨
ⓒ 경북연합일보
우리는 사라지는 것에 대해 무관심했었다. 고샅길로 들어서는 길을 없애고 돌담을 허물고 초가와 기와를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 사람과 사람사이 담을 쳤다. 총 천연색 컬러가 아닌 흑백이 주는 따뜻함과 편안함, 이제 그 순박했던 아날로그의 향수가 그리워진다.
그는 선덕여고 근처 기찻길 옆에서 50여년을 살았다. 2년 전 집을 재건축 하면서 박물관 같기도 하고 카페 같기도 한 ‘우공이산(愚公移山)’ 공간을 만들었다.
그는 “제 호가 ‘우공’인데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묵묵히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다”며 “친구와 후배들 또 주민들과 이곳에서 차를 마시고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멋쩍게 웃었다.
옆으로 길게 낸 창으로 바람에 몸을 맡긴 들판이 창 가득 들어 왔다. 종일 사람과 화물을 실어나르는 기찻길 옆 탐나는 공간이다. 기차가 경주역을 출발했다는 신호음과 함께 기차가 지나가고 또 경주역을 향해 가며 창은 액자가 돼 멋진 풍경을 담는다.
↑↑ 우공이산 정원
ⓒ 경북연합일보
마당 돌절구에는 물옥잠이, 깊게 그늘을 지우는 포도 넝쿨에서는 청포도와 함께 여름이 붉거나 푸르게 한창 익어가고 있다. 퇴직하기 전 마지막으로 근무했던 경주 ‘내남면사무소’ 현판과 고장 난 벽시계가 한쪽 벽을 차지하고 까무룩 졸고 있다.
그는 “내남면 사무소를 새롭게 신축하고 ‘내남면 행정복지센터’로 명칭이 바뀌면서 현판도 역사라는 생각에 집에 갖고 와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물질과 쾌락이 만연한 현대, 그래서 즉흥적이고 감각적인 오늘을 살면서 작은 것 오래 된 것에 마음을 주며 색소폰을 불고 풍금을 치며 지인들과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그의 모습에서 퇴직자의 밝은 모습이 읽혀진다.

△농부 시인, 흙냄새 물씬 나는 정직한 인생

눈길// 하얀 흰 눈이 내렸다/아무도 가지 않은 그 길을 걸었다/하얀 흰 눈이 위 남긴 발자국// 설밭을 걸어가 본다/ 나는 똑바로 걷고 있다// 무심코 돌아 본 눈길/ 구부정히 돌아가는 발자국/ 내가 살아온 날일까?// 나는 또 다시 하얀 눈길을/ 똑 바로 걸어가 보려/ 애를 쓰고 있다.
문예대 29기로 문학을 공부하면서 쓴 시다. 어느 날 내린 들판에 찍힌 발자국을 보면서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했다고 한다.
지난 2018년에 『아카시아 꽃잎 떨어지면』시집을 발간했다. 시집에는 친구들의 축하의 글과 자연을 닮은 인생을 노래한 시와 산문, 동시, 손자손녀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져 있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별’에 대해 어찌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상실과 쓸쓸함을 노래하고 있다.
그는 매일신문 재난안전관련 수기 공모 입선, MBC 라디오 여성시대에 편지가 4회 방송됐다. 편지를 쓰고 수필을 쓰고 시를 쓰며 가을날 유실수처럼 잘 익어가고 있다.
퇴직을 앞두고 많은 이들이 노후를 어떻게 설계할까 고민을 할 것이다. 그는 일찌감치 다양한 분야에서 자격증을 취득하며 제2의 인생을 활기차게 준비했다. 계획적이고 철저한 노후 준비에 샘이 날 정도다.
그는 "8일에는 경주시보건소에서 '심폐소생술' 응급처치 관련 강의를 했다"며 " 앞으로 재난안전지도사 1급을 취득해 더 많은 분야에서 봉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집 뒤로 보이는 논에는 벼가 한창 키를 높여가고 있었다. 12년 전부터 내남면 2만평에 산삼농사를 짓기 시작했으며 퇴직 후 용돈이라도 벌어야겠다는 생각에 굴삭기 면허증을 독학으로 취득했다. 10여년에 걸쳐 1년에 한 개씩 자격증을 취득하기 시작해 이젠 15개의 자격증을 갖고 있다.
그는 “밭에는 상추, 고추, 깻잎, 호박, 무, 배추를 심어 절반은 벌레에게 내어주고 또 절반은 그리운 이들 불러 함께 나누고 그래도 혹 남는 게 있다면 텃밭에 다시 돌려준다는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고 말했다.

△봉사하는 삶, 건강하고 행복한 노후를 위해

기우택 씨 집에는 문패대신 ‘경주시재난인명구조대’ 현판이 크게 걸려 있다. 그는 1997년 2월 120명의 회원으로 ‘재난 통신지원단’으로 경주시청 노동청사 대회의실에서 창단식을 갖고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경주시재난인명구조대’로 변경해 경주, 포항 등 전국 각 지역에서 돌발적으로 발생되는 각종 재난현장에 신속하게 출동해 구조활동을 펼쳤다. 인적, 물적 피해를 최대한 줄이는데 그 일익을 담당하며 지역민을 위해 헌신 봉사하며 자발적 순수 단체로 역활을 다하는데 구심점 역활을 해 왔다. .
박원철 경주시공보관은 “기우택 씨는 경주시에서 봉사활동을 가장 많이 한 모범 공직자”라며 “힘든 상황에서도 자발적인 봉사활동으로 경주시 공무원들의 귀감이 되는 선배 공무원이다”고 말했다.
↑↑ 익수자 수상구조를 하고 있다.
ⓒ 경북연합일보
그는 회원들과 기록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명구조에 참여했다. 사고어선 재수색 인양작업, 물놀이하던 익수자 구조, 덕동댐 익사사고자 차량인양, 2009년 12월 경주 남사지 관광버스 전복사고, 2014년 2월 경주마우나오션리조트 체육관 붕괴 사고, 같은해 4월 세월호 사고가 난 팽목항 등 구조의 손길이 필요한 곳에는 어김없이 그가 있었다. 2016년 9월 12일 내남면에서 발생한 ‘경주지진’때는 그곳이 근무지라 기억이 더 생생하다. 5.1, 5.8규모의 강력한 지진은 지역특성상 시골마을이라 많은 어르신들이 불안감을 호소해 일일이 찾아뵙고 심리적 안정을 찾게 도왔으며 여진이 있을때 마다 내남면 곳곳을 다니며 담장과 기와가 떨어진 곳을 살폈다.
그때 경험으로 2017년 11월 15일 ‘포항지진’ 현장에서 붕괴위험 직전의 아파트에서 이삿짐을 실어내고 노약자들을 구조했다. 최근에는 코로나19 현장에서도 자원봉사를 펼쳐 많은 공무원들에게 모범을 보였다.
그는 기회가 된다면 "동양철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을 바로 살기위해 철학을 공부하고, 현실의 잘못된 점과 나의 잘못된 점을 고치고 양심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8일 늦은 시간 '우공이산' 공간에서 권향인 후배 공무원에게 행복한 공직생활에 대해 이야기하며 "퇴직후 인생 2막을 잘 준비하라"는 당부를 아끼지 않았다. 오는 12일 집수리 봉사를 준비하는 그의 얼굴이 인생의 길에서 특별보너스를 받은 듯 환하다.

취재 동행=경주시선도동복지센터 권향인 복지팀장
김희동 기자
↑↑ 주낙영 경주시장이 부인 김옥순씨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있다.
ⓒ 경북연합일보

↑↑ 지난 6월 30일 퇴임식에서 가족과 함께.
ⓒ 경북연합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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