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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해를 품은 구렁이 신단(1)
정형진 신라얼문화연구원장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6월 16일(화)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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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우지암 화백회의 고속도를 달려 경주 톨게이트를 막 지날 즈음 경주 남산을 바라보면 마치 게의 눈처럼 튀어나온 봉오리가 보인다. 해서 이곳을 해목령이라고 한다. 이곳에 올라서면 경주분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정상은 아니지만 사방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입지다. 그래서 이곳은 경주분지에 살던 사람들에게 소중한 공간이었다. 『삼국유사』 권1 기이1 진덕왕조에 보면, 알천공·임종공·술종공·무림공·염장공·유신공 등 당대 최고 대신들이 우지암(于知巖)에 모여 국가대사를 논의하는 장면이 나온다. 조정의 여섯 대신이 모여 화백회의를 열었던 것이다. 알다시피 화백회의는 신라에서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 하던 제도로서 의견이 만장일치가 돼야만 안건이 통과되던 제도였다.
경주 남산, 해를 품은 구렁이 신단 우지암회의의 결정사항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알천공 추대가 안건이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선덕여왕 추대가 안건이었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일연은 정작 회의 주제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고 그 회의과정에 있었던 일화만 기록해 놓았다. 이야기인즉슨 '회의를 할 때 콘 호랑이가 나타나서 좌중에 뛰어들어 여러 공들이 놀라 일어났으나, 알천공은 움직이지 않고 태연히 이야기 하면서 호랑이의 꼬리를 잡아 땅에 메쳐 죽일 정도로 알천공은 대단한 완력이 있어서 수석에 앉았지만, 여러 공들은 모두 유신공의 위엄에 복종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신라에는 네 곳의 신령스런 땅이 있어서 나라의 큰일을 의논할 때면 반드시 그곳 중 한 곳에 모여 의논하는데 그러면 일이 꼭 성사되었다'고 한다. 그 네 곳의 신령한 땅은 하늘과 소통하던 곳일 것이다. 그런데 국가의 중대사를 논의하던 우지암이 어디인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윤경렬선생은 그 위치를 지금 경주국립박물관 남서쪽에 있는 도당산의 남쪽 어딘가일 것이라고 추정했고, 강인구는 경주 남산 삼릉계의 속칭 기암(碁岩^바둑바위)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필자는 해목령에 있는 '해를 품은 구렁이 신단'이 우지암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정한다. 필자가 '해를 품은 구렁이 신단'을 우지암으로 추정하는 근거는 우지암을 오지암으로도 불렀기 때문이다. 오지암은 우리말 오지그릇을 연상시키는데 사진에 보이는 바위가 마치 그런 형상을 하고 있다.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이 바위는 사로국을 창업한 박혁거세 집단의 종교적 성소였다. 박혁거세 집단이 하늘에 제사하던 그곳에서 국가 중대사를 논의 했다는 것은 정황상 그럴듯하지 않은가.
조상들의 정신세계를 알아야 자 그럼 이 특별하고 묘하게 생긴 바위가 어떤 용도였는지, 과연 박혁거세를 포함한 박씨 세력의 우주생명관과 부합하는지 알아보자. 이 바위는 '바위에 큰 구멍을 내 태양을 표현했고, 그 태양 주위를 구렁이가 감싸고 있는 형상'이다.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도상이 고대 이집트에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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