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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과 실패, 그 원인은 무엇인가?
정석준 전 경주불교연합회장/법사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6월 14일(일)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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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사람이 사는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천태만상(千態萬象)이다. 어떤 사람은 부자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하게 태어나며, 어떤 사람은 하는 일마다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하는 일마다 실패하며, 어떤 사람은 수명 장수하는데, 어떤 사람은 20살도 못 넘기고 단명하며, 어떤 사람은 미인으로 태어나고, 어떤 사람은 박색으로 태어나는데,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 이 문제는 정말 난제(難題)요 수수께끼요 아포리아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형이상학적인 문제로써 철학과 종교에서 다루고 있으나, 철학은 문제만 제공할 뿐 선뜻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으며, 종교에서는 나름대로 답을 내놓고 있으나, 납득할 만한 답을 찾기가 어렵고, 특히 유일신을 믿는 종교와 무신론적 종교인 불교는 확연한 입장 차이를 나타내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유일신을 믿는 종교이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직접 천지를 운행하고 인류의 역사와 인간의 운명을 주관하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히틀러가 수백만의 유대인을 학살한 것도, 공산주의자들이 종교는 아편이라고 하여 교회를 파괴하고 신앙 활동을 금지한 것도, 남북이 분단되고 동족끼리 총대를 겨누고 있는 것도, 북한에서 김일성·김정일이 살아있는 신으로 숭앙받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달려있다면 인간이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 할 필요가 없게 되는 것이며(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므로), 사람이 죄를 지을 때 그 죄의 책임도 당연히 신의 책임으로 돌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 죄도 신의 뜻에 의해 지어졌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으므로, 그 책임도 당연히 인간이 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창세기 어디를 살펴보아도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 먹지 말라는 계명과 선악과 따 먹으면 죽는다는 말씀만 있을 뿐,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그런데도 기독교인들은 그 근거를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하나님의 모양대로 창조했기 때문에(창 1:26),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양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그럼 불교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가? 부처님 당시 인도 사회는 사상적으로 전통종교인 바라문교(힌두교의 전신)에 반기를 들고 신흥사상가들이 많이 등장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사상가를 육사외도라 칭하였다. 6사외도의 사상을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모든 것은 신의 뜻이라는 신의론(神義論), 모든 것은 전생에 지은 업에 따라 정해져 있다는 숙명론(宿命論, 일종의 運命論), 모든 것은 그저 우연히 일어난다는 우연론(偶然論)이 그것이다. 이러한 외도(外桃)들의 주장에 대해서 부처님은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거나 이미 정해진 숙명, 또는 우연에 의해 우리의 삶이 결정된다면 인간의 의지와 노력, 도덕적 행동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하면서, 연기론(緣起論)을 주창 하였다. 연기를 인연·연분·연기 등 여러 가지 용어로 쓰여 지고 있는데, 그 의미는 같은 것이다. 연기란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준말로, 인(因)이란 직접적인 원인(直因)을 말하고, 연(緣)이란 간접적인 원인(間因, 條件)을 말한다. 따라서 연기란 인과 연에 의해서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 이치(법칙)를 말한다. 어떤 결과가 발생하려면 거기에는 반드시 인과 연이 결합하여야 결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인만 있고 연이 없으면 과(果)가 일어나지 않고, 연만 있고 인이 없어도 과가 일어나지 않는다. 반드시 인과 연이 만나야 과가 일어나며, 과가 일어났다면 반드시 인과 연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공간적으로 고립하여 있지 않고 '더불어'있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관관계에 있으며, 따라서 그럴만한 조건이 있어서 생긴 것이며 그럴만한 조건이 없어지면 그 존재 또한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불교의 연기설이다. 이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 것처럼,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만든 결과이며, 미래의 나는 오늘 내가 어떤 삶을 사느냐에 달린 것이다. 그러니 누구를 탓하며,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모두 네 업보요, 내 책임이다. 이와 같이 신을 믿는 종교에서는 성공과 실패 등, 이 세상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불교에서는 자기 인생의 주체(주인)는 자기 자신이며, 자기의 의지와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자기 운명을 개척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느 종교의 가르침이 보편타당성이 있는 가르침인지 그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돌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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