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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칼럼
손수건
이은서 치유글쓰기센터소장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6월 04일(목) 17:25
ⓒ 경북연합일보
울적한 날이면 나는 종종 쇼핑을 한다. 그러나 어리번쩍한 것들을 다 제쳐두고 내 눈을 사로잡는 건 매번 손수건이다.
 조명을 받으며 진열대에 가지런히 개켜져 놓여 있는 형형색색의 손수건들은 얌전한 숙녀처럼 보인다.
 내가 사는 동네에 '화사방'이란 작은 옷가게가 있는데, 정말 가게 이름처럼 화사하고 앙증맞은 손수건이 다 모여 있다.
 자잘한 안개꽃이 수놓인 것, 동백, 탐스런 수국봉우리 자수 등의 손수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나면 나는 갤러리에서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감상한 듯 울적했던 기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린다.
 늘 그랬듯이 나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손수건을 사서 서랍장에 곱게 넣어둔다.
 언제부턴가 내 서랍장에는 옷보다 손수건이 더 많이 쌓였다. 나는 그것들은 차마 쓰지 못한다.
 그냥 무슨 보석인 양, 사랑하는 애인에게서 온 엽서인 양, 차곡차곡 넣어두기만 한다.
 나는 손수건 수집가처럼 보인다. '화사방' 주인도 나의 취향을 눈치 챘는지 내가 갈 때마다 새로 가져다 놓은 손수건을 보여준다.
 내가 모은 많은 손수건들 중에 사거나 선물 받은 게 아닌 손수건이 딱 한 장 있다.
 아무런 색도 없고 아무런 꽃 자수도 없고 뻣뻣한 무명천으로 된 손수건. 가장자리가 대충 시침질로 마무리된 그것은 우습게도 자그마치 50년이 다 되어가는 골동품이다.
 그러나 나는 그 손수건을 가장 아낀다. 그것은 내게 그냥 하나의 손수건이 아닌 다른 무엇이다.
 한 번도 쓰지 않았지만, 누렇게 변색하지 않도록 다시 삶아 새하얗게 만들어서 다려둔다. 부드럽지도 않아서 아이가 닦으면 코가 헐었을 그것.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담임선생님은 여리여리한 아가씨였다.
 항상 무릎을 겨우 덮을 만한 치마를 입고 알맞은 굽의 구두를 신었던 선생님이 나는 약간 무서웠다.
 딱딱 부러지는 말투조차도 얼마나 정갈한지 코를 훌쩍대는 우리로서는 접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 선생님이 특히 강조하는 것도 청결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레이디 앤 젠틀맨'이었을 영어를 들먹이며 깔끔해야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침마다 손톱과 발톱을 검사했고 더러운 아이는 따끔하게 혼냈다.
 나도 수시로 손바닥을 맞았다. 그러나 손발이야 씻으면 되는 거였지만 큰 문제는, 반드시 손수건을 지참하라고 시켰고 매일 검사를 했다는 것이다.
 손수건 같은 게 있을 리 없는 나는 당연히 그냥 등교를 했고 반 이상의 아이들이 손바닥을 맞았다. 그래도 반이나 함께 맞을 때는 괜찮았다.
 매일 검사를 하고 혼내다 보니 아이들은 차츰 손수건을 가져왔고 매를 맞는 아이의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었다.
 나는 내 짝도 함께 매를 맞는다는 것에서 위안을 삼았는데 어느 날은 어머니가 손수건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는지 무명천을 대충 잘라서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나는 그 손수건을 꺼낼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모두 꽃무늬가 있거나 자수를 놓아 만들었거나 하다못해 단색이라도 있는 것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검사를 하고 내 차례가 다가올 때 나는 주머니에 들어있는 그것을 만지작거렸지만 결국 끄집어내지 못했다.
 다른 아이들의 손수건은 대체로 부드러워 보였는데 내 호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그것은 푸댓자루처럼 손바닥이 꺼끌꺼끌해서 나는 차마 선생님 앞에 내놓을 수가 없었다. 그날도 내 짝과 나는 손바닥을 맞았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그 손수건을 가져가지 않았고 내 짝은 나를 배신했다.
 내 짝이 주저주저 하면서 조심스럽게 책상 위에 올려놓은 손수건 앞에서 선생님은 한참 장승처럼 서 있었다.
 그 표정과 눈빛을 나는 똑똑히 보았다. 난감함과 자책감이 동시에 흐르는 그 표정을 나는 오래 잊을 수가 없었다.
 짝이 내놓은 건 누가 봐도 손수건이 아니라 밥상보였던 것이다.
 집에 돌아가는 길에 짝에게 말했다.
 "그런 거라면 나도 얼마든지 가져올 수 있어."
 나는 나도 내일부터 어머니가 만들어준 손수건을 가져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까짓 밥상보도 가져오는데 뭐, 싶었다. 어머니가 준 게 밥상보 보다 나았으니까.
 다음 날 나는 당당하게 손수건을 챙겨갔고 선생님이 검사할 시간을 기다렸다. 미리 지레 겁을 먹고 마른 손바닥을 부비며 맞을 준비를 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책상 위에는 여전히 손수건을 올려놓지 못한 친구들이 더 많아보였다.
 그러나 선생님은 이제부터 손수건 검사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오히려 어제까지 손바닥을 맞은 아이들에게 손수건을 하나씩 나누어주기까지 했다.
 나도 분홍색 손수건을 얻었고 얼마나 오래 썼는지 미어지고 구멍이 나서 버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서랍을 열어 손수건을 모두 꺼내어 다시 빨았다. 복작거리는 거품 하나하나가 손바닥을 맞았던 아이들 얼굴처럼 보였다.
 빨랫줄에 널린 손수건들이 바람에 날렸다. 시침질이 얼기설기 돼 있는 광목 손수건과 갖가지 브랜드에서 나온 손수건들이 햇살에 반짝거렸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그 날의 친구들, 선생님과 함께 했던 시간들이 손수건 위에 따스하게 내려앉는다.
 손수건 한 장 갖는 것이 어려웠던 시절에 밥상보를 당당하게 내밀었던 친구의 이름은 무엇이었을까. 거친 현실을 마주하는 그 자세를 나는 아직도 부러워만 할 뿐 배우지 못했다.
 거친 광목 손수건. 그것은 우리의 가난이자, 쓰러지지 않는 당당함이자, 우리 모두의 암묵적인 이해와 사랑이었다.
 지금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 교실에 앉았던 친구 모두에게 따스한 햇살에 데워진 손수건을 선물하고 싶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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