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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왕검사회의 종교를 아십니까(3)
정형진 신라얼문화연구원장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6월 02일(화)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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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도교의 뿌리는 공공족의 문화 여기서 우리는 아주 흥미로운 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중국의 도교가 동북지역에 있던 고대한국인의 아득이 마을에서 발굴된 돌판 사상이 중원으로 내려가 형성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선도에 관한한 한국이 종주국이라는 생각을 한다. 이 부분은 학술적인 근거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막연히 전하는 말이 그렇다는 투다. 그럼에도 일반인들 중에는 그러한 사실을 믿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학계에서는 마치 칠성신앙이 중국의 도교가 들어와 형성된 것처럼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칠성신앙은 도교 신앙 중에서도 가장 오랜 연원을 지니고 있다면서 우리의 칠성신앙을 도교와 연결한다. 그러나 칠성신앙은 우리고유 신앙이다. 칠성신앙은 삼국시대에 도교가 한반도로 유입되기 이전부터 있었다. 그러한 사실은 고인돌이나 암각화에 나타나는 칠성신앙의 흔적으로 고증된다. 북한학계에서 기원전 30세기와 25세기경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고인돌(함주군 지석리 고인돌) 덮개돌에도 칠성이 새겨져 있다. 실제로 만주를 포함한 한반도 전역의 고인돌이나 암각화에는 칠성이 무수히 많이 새겨져 있다. 문제는 이들 칠성이 제작된 연대를 제대로 고증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고인돌이나 바위에 새겨진 알터에 칠성이 있지만 그것이 단군왕검시대의 유산이라는 확증은 없다. 알터를 새기는 행위는 근대에까지 이어진 것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고인돌에 새겨진 알터도 근대에 새겨졌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포항시 흥해읍 영일민속박물관 마당에 있는 조선 중기(崇禎: 1628~1644) 군수 공덕비가 한 예가 된다.
△포항 칠포리 농밭재 윷판암각화 공덕비에 알터가 새겨졌으니 그것은 그 비가 새워진 다음이 분명하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감은사지 삼층탑에도 알터가 새겨져 있다. 이 또한 탑이 새워진 후에 만들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칠성을 새긴 돌이 땅 속에 묻혀 있고 그것이 고인돌과 함께 있었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마침 그런 물증이 있다. 충북 청원군 문의면 아득이 마을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옆에 묻혀있던 돌 판에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다. 이는 고인돌에 조성된 칠성이 고인돌을 만들 당시에 조성했다는 것을 말한다. 단군조선인들의 무덤양식인 고인돌에 칠성을 새겼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들이 칠성님을 믿었다는 이야기다.
△윷판암각화와 칠성탱화 고인돌뿐만 아니라 암각화에도 칠성과 관련된 유적이 있다. 윷판모양으로 새겨진 것이 그것이다. 윷판암각화는 칠성의 운행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들 암각화는 청동기시대 이래 만들어졌는데 전국 도처에 상당히 많은 양이 보고되고 있다. 이것들이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분명 중국의 도교가 생기기도 전이고 더더구나 한반도로 유입되기 이전이다. 이 윷판암각화는 단군왕검사회와 관련해서 이해해야한다. 왜냐하면 단군왕검시대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내몽골 적봉시 삼좌점에 있는 하가점하층문화(기원전24~14세기) 유지의 석성에도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 요령성 집압시 우산하에도 윷판암각화가 있다. 단군왕검사회의 문화가 동으로 이동한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전역에 보인다. 우리가 칠성신앙의 잔재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사찰의 칠성각이다. 칠성각에 모셔진 칠성님은 불교·도교와 습합된 칠성님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뿌리는 분명 단군왕검시대에 닿아 있다. 칠성신, 칠성님으로 불리며 신앙되던 것이 불교가 들어와 널리 퍼지면서 불교신앙에 포섭됐고 후에 도교가 들어오며 도교의 칠성신인 칠원성군이 또 습합됐다. 사실 중국에서 발생한 도교는 7세기 전반에 고구려에 '오두미교(五斗米敎)'가 들어와 민간에 확산되면서 전파되기 시작했다. 또한 중국 도교와 관련된 북두칠성은 11세기 이후 고려 조정에서 모시게 된다. 고려 후기에 들어와 불교와 습합된 북두칠성이 그려진 불화가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치성광여래도'가 그것이다. 이 치성광여래도는 조선시대 후기에 오면 칠성탱으로 불린다. 민간인에서는 칠성님이 더 중요한 존재로 인식된 것이다. 이는 민간에 전승되던 칠성님이 힘을 발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북두칠성에 대한 관심은 유라시아 대륙의 거의 모든 민족들이 가지고 있지만, 칠성각만은 한국에만 존재한다. 칠성각은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다른 나라 사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이다. 칠성신앙이 우리나라에서 유독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증거다. 칠성신앙은 단군왕검시대 이래 우리의 고유 신앙이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가졌던 신앙이다. 그것은 민속신앙에서 칠성신앙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알 수 있다. 전통사찰에 가서 칠성각, 산신각, 용왕전, 북극보전, 삼성전 등에 모셔진 신들의 위치를 확인해 보라. 그것들이 독립적으로 조성됐든 한 전각에 여러 신들을 모셔놓았던 칠성여래[치성광여래, 북극성]는 늘 중앙에 좌정하고 계신다. 그분이 가장 존귀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하느님이었으니까. 칠성여래는 무당 무(巫)자에 보이는 신목의 수직선상에 계시기도 하고, 소도에 세웠던 큰 나무의 수직선상의 하늘에 계시는 우리의 영원한 하느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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