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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치 가문과 메디치효과
전인식 시인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5월 13일(수)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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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15세기 유럽의 르네상스, 즉 문예부흥 운동의 배경에는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가 사람들을 빼곤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처음에는 평범한 중산층이었으나 은행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 부를 통해 350년간 정치적 막후 실세로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심지어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자금난을 겪던 영국왕실에 까지 자금을 대주기도 했다. 요즘 용어로는 '정경유착'의 대표적 가문으로 볼수도 있다. 정치와 경제의 결탁과 결합의 역사를 우리는 지난날을 통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메디치가 달리 평가 받는 것은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그들을 통해 수많은 작품들을 꽃 피울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름만 되면 알 수 있는 레오나드로 다빈치, 미켈란젤로, 보티첼리등을 비롯한 많은 예술가와 '신곡'의 단테 '데카메론'의 보카치오 '군주론'의 마키아벨리등의 시인들이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천문학자 갈릴레이는 새로 발견한 목성의 위성인 별에 '메디치'라는 이름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만큼 학자들과 예술가들 후원을 통해 르네상스 시대로의 접어들게 만들었다. 인쇄기술 발달과 고전문헌의 전파등 인문주의 기틀을 마련하고 소상인들의 등장, 정치의식의 변화, 민족주의 대두 시류변화의 물길을 내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한마디로 세상을 변화하게 한 숨은 주역이라 볼 수 있다. 메디치가를 탄생시킨 1대 조반니 디비치를 비롯해 몇 대를 이어오기까지 정적들의 공격은 물론 로마 카톨릭과의 관계유지를 위해서는 관대함과 포용력과 여러 항목들을 갖추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단순히 상업자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메디치 가문만의 노하우가 존재했을 것이다. 1513년, 드디어 메디치가에서 첫 교황을 배출하게 이르는데 그가 바로 교황 레오10세이다. 이른바 면죄부를 발행하는 주인공이 되고 4년 후 종교개혁의 대상이 되는 태풍을 맞이하기도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메디치 가문에 의한 문예부흥 운동과 인문주의 확산은 그들 가문이 자랑스럽게 배출한 교황의 몰락을 가져오는 부메랑이 되고 말았다. 이외에도 레오 11세, 클레멘트 7세등의 교황을 배출했으며 1434년부터 1737년까지 300년 동안 메디치가는 르네상스의 중심 피렌체의 번영과 영화를 함께 누렸다. 근래에 와서 경영학 쪽에서 메디치 가문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메디치효과'라는 경영학 용어가 등장했으며 필자 또한 경영학에서 제일 먼저 접한 용어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분야의 요소들이 결합할 때 각 요소들이 가지는 합보다 더 큰 에너지를 나타날 때 사용한다. 메디치 가문에 모인 예술가, 철학자, 과학자, 성직자등 각자의 전문분야를 벽을 허물고 상호 재능을 융합해 보다 큰 시너지효과를 창출한 예에서 기인한다. 경영학에서 혁신과 창조를 언급할 때 자주 쓰는 말이다. 또 기술경영 분야에서는 '메디치방식' 이라고 응용 표현한다. '메디치 머니' 는 더러운 돈이 가장 고귀하게 사용될 적에 사용하는 용어이다. 이는 메디치 가문의 돈이 신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교황을 위해 사용됐고, 다른 한편으로 그 돈은 예술후원으로 문예부흥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도 블랙머니들이 자금세탁에 전전긍긍하지 말고 음지에서 양지로 걸어 나왔으면 좋겠다. 경제를 위해, 사회를 위해, 예술을 위해 아름다운 역할자가 되고 후원자가 됐으면 좋겠다. 사실, 메디치 효과는 4차산업 시대에 딱 맞아 떨어지는 용어이다. 초연결사회, 빅데이터시대, 혁신적 플랫폼으로서 기대치가 크다. 이종 업종 간의 융합을 통해 창조적인 아이디어 창출의 결과물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아울러 인문학의 발전과 동반성장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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