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단군왕검사회의 종교를 아십니까(2)
정형진 신라얼문화연구원장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5월 12일(화) 17:34
|
|
 |  | | | ⓒ 경북연합일보 | 환웅의 종교 칠성신앙 그렇다면 당시를 주도했던 종교가 어떤 것이겠는가. 당연히 환웅이 가져온 종교 아니겠는가. 그 환웅이 가져온 종교가 바로 칠성신앙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주장을 할 수 있는 근거는 충분할까. 먼저 환웅세력이 어떤 세력인가를 알아야 한다. 사실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수시아나에서 온 환웅』에서 충분히 설명했다. 필자는 환웅세력이 중국의 중원에서 신석기시대 황하문명을 주도하던 공공족이라고 규정했다. 아니 필자가 규정한 것이 아니라 통일신라기의 고승이었던 자장스님이 그렇게 규정했다. 그는 당시까지 전해오던 어떤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 내용은 『삼국유사』 탑상편, '황룡사 9층탑'조에 나온다. 거기에서 자장은 '신라 김씨왕족을 사카족과 인연이 있다고 했고, 이전에 신라를 이끌던 세력, 즉 박씨계열을 동이공공족'이라 했다.
법전자 갑골문에서 해서체까지의 변화 따라서 첫째는 환웅세력으로 추정되는 공공족의 문화유산을 잘 이해하면 그들의 신앙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있다.둘째는 암각화나 알터에 보이는 윷판암각화로 알 수 있다. 셋째는 우리 민간신앙 중에서 가장 강력한 신앙이 칠성신앙이라는 데서 추정할 수 있다. 먼저 공공족이 가지고 있던 가장 근본적인 종교문화를 살펴보자. 그들은 하늘을 관찰하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중원에 살 때부터 하늘을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그 변화를 기록했다. 그들은 왜 그토록 하늘을 관찰하는데 정성을 쏟았을까. 그것은 하늘을 섬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늘을 관찰하며 하늘의 뜻을 살피고 그 뜻을 받아 살고자 했다.
공(共)자의갑골문(『中國古文字的起源』) 중국의 유명한 미술사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왕대유에 따르면, 법 전(典)자는 '네모난 단(壇)에 나무기둥을 세운 형태인 공(工)에서 비롯됐다. 왕대유는 '이 전(典)자는 공공족이 자신들의 제단에서 하늘의 뜻을 기록하던 것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결국 법전자의 시작은 하늘을 섬기며 천문을 관측한 기록이 권위를 가진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다. 법전자의 아래 부분은 두 손으로 기록물을 받들고 있는 두 손을 표현한 것이다.
소도는 공공족의 제단 한마디로 공공족은 하늘과 소통하던 사람들이다. 그것은 그들을 부르던 공공(共工)이라는 집단이름으로도 알 수 있다. 공공을 풀이하면 공공은 '공(工)을 받드는(共)'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그들은 신성한 제단(우리의 '소도(蘇塗)')을 만들어 놓고 하늘을 섬기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받들 던 하늘의 중심에 하느님(환인)이 사는데 그곳이 북두칠성으로 둘러싸인 북극성이다. 그와 같은 우주생명관을 가진 공공족 즉, 환웅족의 신앙이 곰 신앙을 누르고 주도적인 신앙이 됨으로써 웅녀의 곰 신앙은 차차 그 힘을 잃게 됐던 것이다. 그 신앙이 바로 칠성신앙이었다. 칠성신앙을 주 신앙으로 하던 단군왕검사회의 주도층이 은나라 무정 8년 이후 요동남단과 서북한 지역으로 이주한다. 이후 그들은 한반도 남부로 확산된다. 『삼국지』 한조에 등장하는 소도(蘇塗-솟대)는 바로 제정일치문화를 가지고 있던 단군왕검사회의 종교 시설이었다.
소전의 무(巫)자 삼한시대가 되면 제사권과 정치권력이 분화되기 시작한다. 소도는 바로 제정일치시대의 제사장이 하늘의 뜻을 살피던 성소다. 소도를 살펴보면 그곳이 바로 칠성신앙의 제단이었으며 무당(제정일치시대의 단군)이 하늘의 뜻을 살피던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지』는 소도의 모습을 "또한 모든 나라에는 각기 별도의 읍이 있으니 이름하여 소도라 한다. 큰 나무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달아 귀신을 섬긴다"고 전한다. 여기서 '큰 나무[大木]를 세우고 방울과 북을 달아 귀신을 섬기는' 전통은 단군시대 신앙행위의 핵심이다. 소도신앙의 제단은 제단의 중앙에 우주목을 세우고 하늘의 신령과 소통하는 곳이었다. 그때 가장 존귀한 신령은 칠성님이다. 그 우주목의 수직선상의 하늘 중심에 하느님인 환인이 살고 있고, 그곳은 칠성으로 둘러싸인 북극성이다. 그림으로 제시한 무당 무(巫)자는 바로 우주목 아래에서 두 무녀가 신탁을 받고 있는 장면을 상형한 것이다. 그러니까 중국 무속의 뿌리는 환웅에 있고, 그 환웅은 한민족에게 정신적 뿌리를 내려준 사람이다. 참고로 한민족과 인연이 깊은 에벤키족 무당의 굿판에도 소도에 있던 큰나무[大木^천막의 한가운데는 투루(turu)라는 이름의 나무 한 그루]가 있다. 우리무속에서 신장대는 소도에 세우던 큰 나무다. 이 문화는 일본 신도문화로도 전파됐다.
|
|
|
경북연합일보 기자 - Copyrights ⓒ경북연합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최신뉴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