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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와 팔찌
이은서 치유글쓰기센터 소장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4월 02일(목) 16:50
ⓒ 경북연합일보
집과 일터 외엔 좀체 밖에 나가지 않는 내게 한 시간 넘게 운전을 해야 하는 나들이는 거의 없다. 특히 큰 교통사고로 죽을 고비까지 넘긴 내게 운전의 트라우마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러나 요즘 내게는 아무리 먼 길이라도 행복한 마음으로 집을 나서는 일이 생겼다. 난생 처음으로 멀리 수학여행을 떠나는 여고생처럼 들떠서 전날부터 잠까지 설친다. 딸아이 집에 가는 친정엄마처럼 온갖 먹거리를 챙기고 보따리를 쌌다 풀었다 우왕좌왕한다. 그날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기도 하고 심지어 미장원에 다녀오거나 한껏 정성들여 화장을 하고 추운 날 짧은 치마를 꺼내 입기도 한다. 나는 어떤 애인을 이토록 심장 떨리게 만날까 싶은 기분이 들 정도로 흥분한다.
 20년 만에 다시 만난 친구.
 우린 순수한 문학소녀로 만났고, 밤새 서로의 아픔을 다독거려 주었다. 시를 이야기하고, 철학을 이야기하고, 꽃을 이야기했었다. 때로는 사랑에 대해서도 마구 떠들기도 했다.
 그러다가 각자 현실의 무게에 짓눌려 서로를 잠시 잊었다. 그 시간은 길고도 길어 20년이 흘렀지만, 사실 우리는 서로를 잊은 게 아니라 더욱 그리워하고 있었다. 만나야지, 만나야지 하면서 참 문학적 감성이 뛰어난 친구였으니 지금도 어딘가에서 그 열정을 빛내고 있으리라는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나대로 더 많은 공부를 하고 새로운 학위를 따고 강단에서 수업을 하느라 지친 몸 침대에 눕힐 때에야 비로소 친구 생각을 하곤 했다.
 이렇게 고단한 현실 중에도 나는 그 친구를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마치 숨겨둔 보석을 언제라도 꺼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처럼 정말 삶의 마지막 보루처럼 내 가슴 깊은 곳에 간직한 채 나이를 먹었다.
 그러다가 수소문 끝에 거짓말처럼 다시 만난 친구.
 내 짐작대로 친구는 작가가 되어 있었다. 나는 내 일처럼 기뻐 눈물을 흘렸고, 또 친구는 자기 일처럼 내 사는 모습을 놀라워하고 기뻐했다. 참 우습게도 나는 혹여 친구가 변하지 않았을까 염려를 했지만 우린 조금도 변한 게 없었다. 나는 친구와 주고받았던 편지를 간직하고 있었고, 친구는 내가 사 준 겨울 폴라티셔츠를 간직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절대 버릴 수 없었다고 했다. 우린 그렇게 우리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었고 그리워하고 있었다.
 어제 우린 또 마주 앉아 기나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소녀의 모습도, 마냥 즐겁기만 한 우리의 삶도 아니지만 우리는 서로의 아픔에 진심으로 동참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가 끼던 반지 중에 유일한 진짜 금으로 된 반지를 나는 우리의 증표로 줄 생각으로 갖고 갔다. 그 반지는 내가 힘겨운 아르바이트 끝에 대학을 졸업했을 때 내가 스스로 나 자신한테 선물한 정말 의미 있는 반지였다. 어쩌면 내 삶을 통틀어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에 내가 내 손가락에 끼워준, 나 자신한테 대한 칭찬과 격려였으니 그 반지는 내게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이젠 내게 가장 소중한 선물은 친구가 아닐까.
 내가 반지를 내밀려고 하는 순간에 친구가 먼저 팔찌를 내밀었다. 은으로 된 팔찌였는데, 친구가 하는 말이 이 팔찌는 딱 네 손목에 있어야 어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다시 한 번 우리는 친구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웃고 또 웃고 나이 들어가는 친구 둘이 10대 소녀처럼 웃으며 팔찌와 반지를 나눴던 시간을 우리는 어제 가졌고, 또다시 만날 것이다. 나와 친구는 아무리 바빠도 한 달에 한두 번은 만난다. 이제 그저 그립다, 만나자 하는 기약 없는 약속만으로 시간을 보내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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