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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사로국의 곰 신앙과 곰 신앙을 일본으로 전파한 천일창(3)
정형진 신라얼문화연구원장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3월 24일(화)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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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영남지역의 웅녀 그렇다면 영남지역으로 들어온 곰 신앙 흔적도 있을까. 있다. 그것도 웅녀라는 이름을 가진 곰 이야기가 전한다. 「봉화산의 암곰」 전설에서는 단군신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봉화산 꼭대기 커다란 소나무 아래 암곰이 살고 있었다. 암곰은 사람이 되는 것이 소원이어서 백일기도를 올려 예뿐 소녀가 된다. 이 웅녀는 사냥할 때 곰으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데 길을 잃고 쓰러진 사냥꾼을 구해 준다. 웅녀의 강요로 둘은 동굴에서 동거한다. 일 년 후 웅녀의 경고를 무시하고 사냥꾼은 처자식이 그리워 도망친다. 사실을 알게 된 소녀는 사냥꾼을 찾아 헤매다가 소나무 아래에서 목을 매 죽는다." 석장리 암각화, 오른쪽 중앙에 발자국이 그 아래쪽에 곰발바닥이 여러 개 보인다. 이 이야기에는 단군신화의 흔적이 남아 있다. 암곰이 사람이 되고 싶어 백일기도를 올려 여자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퉁구스인들의 곰 신화에는 없다. 단군신화에 보이는 독특한 설정이다. 또 다른 영남지역 곰 신앙의 흔적으로는 옛 진한지역인 서라벌(경주)에서 발견된 암각화가 있다. 경주 시내를 흐르는 서천과 북천이 만나는 지점인 예기소 북쪽에는 높은 절벽이 있다. 절벽 윗부분에 선사시대 유적인 석장동 암각화가 있다. 청동기시대에서 철기시대에 걸쳐 살던 조상들의 신앙유적이다. 석장동 암각화에는 곰 신앙과 관련하여 매우 주목할 만한 것이 있다. 사람 발자국과 곰발자국이 그것이다. 제시된 탁본의 오른쪽 중앙 부분을 보면 사람 발자국이 있고 그 왼쪽 아래에 짐승 발자국이 여러 개 보인다. 곰 발자국이다. 필자는 이 곰 발자국을 단군왕검사회의 직계 후손인 진인(辰人)들이
구례 천은사 불감 경주지역에 들어와 생활하면서 웅녀신앙을 유지한 흔적으로 추정한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남해왕을 차차웅이라 했을 때 차차웅은 환웅에서 온 호칭이다. 단군왕검사회의 문화가 박씨 왕가에 전달되고 있었다. 그들이 남긴 문화 유적의 하나가 석장리 암각화다. 이렇게 이해하고 보면 박씨 왕가에 곰 신앙을 하는 유습이 남아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증거는 문헌에도 나타난다. 엉뚱하게도 『일본서기』에 있다. 일본 6대 천왕인 수인천왕 3년 「신라왕자 천일창」조를 보면, 천일창이 일본 천왕에게 가져간 예물 중에 "웅신리(熊神籬)"라는 것이 있다. 여기서 '웅신리는 곰을 신으로 모시는 휴대용 신전'같은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도 불감이라는 휴대용 불단이 있다. 그와 유사하다고 보면 된다. 천일창이 일본으로 가져가 일본 왕가에 웅신리를 선물했다는 것은 일본 왕가에서 이미 곰을 신앙하고 있었거나, 적어도 천일창이 이주한 후에는 곰을 신앙했을 것이다. 이는 단군왕검사회의 후예들이 곰 숭배 신앙을 만주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전달했음을 의미한다. 사로국 초기의 신라인들이 곰을 신앙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들 중 일부가 일본까지 곰 신앙을 가지고 갔다는 것은 더욱 놀랍다. 그렇다면 천일창은 왜 곰 신단을 열도로 가져갔을까. 그들과 친연성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작은 단서 하나가 역사를 새롭게 풀어낼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사실 이러한 단서는 삼국유사에 수 없이 많다. 다음 기회에 그 단서를 고리로 고대사와 고대문화를 새롭게 풀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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