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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를 위하여 2 -브람스,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 새처럼
전인식 시인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3월 12일(목)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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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플라토닉한 사랑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사람은 아마도 브람스의 클라라에 대한 사랑일 것이다. 스승의 아내, 사모님을 사랑한 남자, 옆에서 끝까지 지켜주는 남자, 영화나 소설속 등장인물 같은 브람스는 플라토닉 사랑의 대명사가 됐다.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음악적 소통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는 눈빛으로, 심장의 언어로 드러나지 않게 가슴속으로 흘러들었을 것이다.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는 독일 북부 항구 도시 함부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콘트라베이스 연주자였기에 자연스럽게 음악을 접할 수 밖에 없었다.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 카페에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친구인 요제트 요하임의 소개를 통해 슈만 부부를 만날 수가 있었다. 슈만이 조울증으로 라인강으로 뛰어들기 두달 전 1853년 9월 30일이었다. 당시 브람스는 스무살이고 클라라는 여성적 매력이 한창이라 할 수 있는 서른네 살이었다. 브람스는 슈만보다 23살, 클라라보다는 14살 연하로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났다. 당대의 최고 작곡가 슈만과 최고의 피아니스트인 클라라와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했고 그들 앞에서 자신의 곡을 연주할 수 있음에 행복했던 시기였다. 슈만이 라인강에 투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브람스는 한걸음에 달려갔다. 슈만의 증세가 악화되고 요양원에 들어가자 상처받고 절망에 빠진 클라라를 도와주며 최선을 다해 그녀 곁을 지켰다. 당시 클라라는 6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었고 7번째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뱃속의 아이에게 노래(피아노 3중주곡1번)를 들려주고 아이가 태어나자 '슈만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작곡하기도 했다. 이토록 그녀와의 음악적 공감과 소통은 우정과 존경에서 사랑의 감정으로 조금씩 마음의 자리가 옮겨가고 있었다. 자신의 마음은 음악 이외 편지를 통해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곤 했다. 클라라에 대한 마음이 어떻게 변해 갔는지에 대해서는 클라라에게 보낸 편지글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존경하고 경애하는 클라라' 에서 '나의 클라라'로 호칭이 변해 갔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모님 클라라는 매정하게도 슈만의 아내, 슈만의 여자만 각인시키며 제자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남편 슈만의 곡 위주로 피아노를 치며 슈만의 홍보대사 역할을 했다. 슈만의 사후 여럿 되는 자녀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워킹맘으로 현실은 고통의 연속이었을 것이고 젊은 남자와 연애할 만큼 여유가 별로 없었던 현실이었다. 솔직히 그녀도 브람스를 통해 고난의 시기를 무사히 건널 수가 있었고 위안을 얻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젊은 청년의 친절한 관심과 접근을 모를 리 없을 테고, 싫어할 이유도 없었으리라. 아니면 사랑이란 감정을 음악적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밀당을 했다고 볼 수 있을까? 여하간 브람스의 맘속에는 클라라가 연인으로 자리하고 있었고 내적 갈등과 고통들은 모두 사랑의 꽃으로 피어나듯 아름다운 음악으로 태어났다. 피아노 협주곡 2악장 부문을 작곡한 후 편지로 '그대의 초상을 그렸습니다' 라고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레퀴엠은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한 곡임에도 '살아 있는 사람에게 이 곡을 바치고 싶다'라고 했다 이는 곧 클라라에게 바친다의 다른 표현이었다.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렇듯 브람스 노래의 대부분은 클라라를 위해 만들어졌음을 알수 있다. 브람스의 음악의 절반은 클라라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은 음악과 함께 살았고 늙어갔다. 1896년 5월 20일 클라라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허둥지둥거리다가 기차를 잘못 타고 40시간 만에 장지에 도착했으나 이미 장례식이 모두 끝난 뒤였다. 존경하던 스승 슈만 곁에 잠들어 있는 그녀에게 '나의 삶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요 가장 위대한 자산이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상실했다' 며 진심으로 사랑했던 한 사람 클라라의 죽음을 애도하며 탄식했다. 클라라는 77년의 삶을 살면서 슈만과의 16년의 결혼생활을 했고, 43년간을 브람스와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지냈다. 그녀가 죽은 뒤 1년도 안 돼 브람스도 클라라의 뒤를 따랐다. 스무살에 만난 스승의 아내를 홀로 사랑하다 독신으로 생을 마쳤지만 음악은 클라라와 함께했다. 클라라가 없었더라면 그의 음악도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좌우명인 '자유롭게 그러나 고독하게 새처럼' 그렇게 살다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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