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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의 어머니 곰인가 호랑이인가(3)
정형진 신라얼문화연구원장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2월 18일(화)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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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백두산 산신은 호랑이 비슷한 시기의 다른 이야기도 백두산 지역에 전해진다. 백두산 아래 웅호구(熊虎溝), 즉 곰과 호랑이가 싸우는 골짜기가 있었다. 그 골짜기에서 곰과 호랑이가 함께 살았다. 그러다 둘은 한 번씩 혈투를 벌였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싸울 때마다 지혜로운 호랑이가 미련한 곰을 이겼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지만, 분명한 것은 백두산 주변에는 호랑이를 신성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더 많았고, 그들이 곰부족 보다 우세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니까 어쩌면 민족의 성산인 백두산 산신은 호랑이 산신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인식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그와 같은 풍습이나 이야기가 백두산 주변에 전해진 것으로 보아 이들 지역에서는 호랑이 산신과 곰 산신이 오랜 기간 공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헌기록을 보아도 요동반도나 한반도에서는 오래 전부터 호랑이를 신으로 대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전국시대에 편찬된 『산해경』 대황동경에는 "군자국이 있는데 의관을 하고 검을 차고 다니며 범이나 호랑이를 부린다"고 했다. 또한 중국 명나라 때 편찬된 백과사전류인 『삼재도회』에서는 '한 노인이 두 마리의 호랑이를 거느리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그 밑에 군자국의 상'이라고 적고 있다. 요동 지역에서 호랑이를 거느리고 살며 신으로 대접하던 사람들의 후예가 동으로 이동해 동해 바닷가에 살았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예(濊)전을 보면 "항상 10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밤낮으로 음주가무를 즐기니 이름해 무천이라 하며, 또한 호랑이에게 제를 올리고 신으로 여긴다"고 나온다. 예국은 지금 강릉을 중심으로 존재했던 나라다. 이들 예인들은 남으로 확산돼 포항지역까지 내려와 살았다. 포항시 신광면에서 나온 '예백장(穢伯長)'이라고 새겨진 청동도장(晋나라 시대)으로 그런 정황을 알 수 있다. 이들을 동예라고 한 것을 보면 그들의 조상들이 살던 서쪽에 예인들의 고향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민족의 주요 구성종족인 예맥족의 예족이 바로 그들이다. 예전엔 예맥족이 어떤 세력인지 추정하기가 매우 어려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예맥족은 바로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곰족과 호랑이족이었다. 최근에는 맥족이 후기홍산문화를 주도하던 곰부족이라는 것에 동의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렇다면 예족은 바로 단군신화에 등장했던 호랑이부족이 아니겠는가. 이제 결론을 내려 보자. 단군왕검사회는 호랑이보다 곰을 토템으로 하는 요서지역에서 출발했다. 처음 그들의 이웃에 살던 예족인 호랑이 토템족은 단군왕검사회와 공존하지 못하고 먼저 동으로 이주해 요동과 서북한을 비롯한 한반도에 먼저 정착했다. 후에 단군왕검사회의 주도세력이 호랑이 산신신앙이 강한 이들 지역으로 이주했다. 따라서 단군왕검사회의 후손들이 한반도로 들어왔을 때 한반도는 이미 호랑이 산신신앙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단군왕검사회가 한반도로 이주했을 때 곰신앙이 약화됐던 것은 그들의 주 신앙이 칠성신앙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와 같은 역사적 흐름을 이해하고 보면 왜 웅녀를 어머니로 한 단군의 후예가 이끌던 한반도에 왜 곰신앙이 약화됐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단군의 어머니는 호랑이가 아니라 단군신화의 내용대로 곰이 맞는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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