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피아노
이은서 치유글쓰기센터소장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2월 06일(목) 09:48
|
|
 |  | | | ⓒ 경북연합일보 | 그것은 꽤 오래된 것이었다. 누가 봐도 너무 낡았고 군데군데 흠집이 있는 별 대수롭지않는 것. 다리마저 한 쪽이 살짝 기울어 똑바로 서 있지도 못했다. 이제는 칠이 많이 벗겨져서 처음 샀을 때의 반짝임은 없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 느낌이 더 편안했다. 항상 내 시선이 가장 많이 가는 곳에 두고 다른 일을 하다가도 자주 거기에 눈길을 주었다. 어린 시절, 나는 피아노가 몹시 갖고 싶었다. 그래서 종이로 건반을 만들어 종이가 떨어지도록 피아노를 쳤다. 내 또래 중에는 피아노를 배우는 친구는 딱 한 명 있었는데 나는 그 친구가 피아노를 배우고 돌아오길 기다렸다가 그날 배웠던 것이 무엇인지 꼬치꼬치 물어보곤 했다. 땅바닥에 꼬챙이로 건반을 그려가며 배우느라 해지는 줄 모르고 엄마에게 혼났던 적도 있었던 그 시절. 중학교를 졸업하면 피아노를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엄마는 저러다 말겠지, 잊어버리겠지, 하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못했다. 종이 피아노를 거쳐 결국, 고등학교 때 작은 나무 피아노를 샀다. 그것은 스마트폰만한 크기였지만 꽤 비쌌다. 몇 달의 용돈을 모아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피아노 중앙에 멜로디(MELODY)라는 고딕체로 고급스런 금박이 새겨져 있었다. 피아노 이름이 멜로디란 뜻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느 장인의 작품처럼 정교하게 보였다. 그래서 더 비싸다는 주인의 말에 힘껏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오늘도 너무 많이 들었다. 태엽을 감는 손가락이 아프도록 들었다. 보통 피아노 연주는 손가락으로 건반을 두드려야하지만 내가 갖고 있는 피아노는 태엽을 감아야했다. 건반은 아예 움직이지 않고 고정이 돼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피아노의 모양을 그대로 본 뜬, 앙증맞은 거였다. 건반을 누를 수는 없었지만 태엽을 감을 적마다 건반이 손가락에 와 닿은 촉감은 나를 몹시 설레게 했다. 피아노 연주를 듣기 위해 태엽을 감을 때 돌아가는 소리는 묘했다, 뚜두두 거리며 태엽이 감기는 소리는 음색을 찾기 위한 어느 음악가의 탐색처럼 진지하게 들리기도 했고 내가 피아노의 가슴에 대고 노크를 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피아노는 언제나 내가 태엽을 감은, 딱 그만큼의 길이만 들려주었다. 더 오래 듣고 싶어서 한꺼번에 욕심을 내어 많이 감기라도 하면 브레이크를 걸어 스톱을 시켰다. 그래서 늘 감질나게 들을 수밖에 없었다. 멈추면 다시, 또 다시를 반복하며 태엽을 감아야만 연주를 들려주는 피아노. 어떨 땐 피아노가 깍쟁이 같기도 했다. 자신에게 태엽을 감아주는 시간만큼만 내게 연주를 들려줬으니까. 맘대로 마구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마치 어느 시점에서 더는 가까이 다가와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정한 사람처럼. 감았던 태엽이 풀리는 순간 음악은 냉정하게 끝이 났다. 1초라도 더 들려주는 법이 없었다. 내가 태엽을 감아주는 그것이 피아노에겐 사랑이었을까. 피아노는 내가 터치한 꼭 그만큼만 대답을 해 준 것 같다. 나는 오늘도 태엽을 감는다.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먼저 한 발짝 다가가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거니까. 비록 늙어가는 몸이지만 기꺼이 나를 위해 연주를 시작하는 피아노. 어둠 속에서 그의 가슴에 새겨진 '멜로디'라는 금빛 글자가 반짝거린다. 나는 천천히 다시 태엽을 감으며 스르르 눈을 감았다.
|
|
|
경북연합일보 기자 - Copyrights ⓒ경북연합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최신뉴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