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단군의 어머니 곰인가 호랑이인가(2)
정형진 신라얼문화연구원장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2월 04일(화) 17:29
|
|
 |  | | | ⓒ 경북연합일보 | 단군의 어머니가 호랑이 또한 국문학자인 서울대 조현설교수는 '혹 단군의 어머니가 곰이 아니고 호랑이였을지 모른다'고까지 했다. 그는 그런 주장이 타당할지 모른다는 전거로 조선 중기의 승려 설암의 기행문 「묘향산지」에 나오는 이야기를 든다.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에 내려와 신단수 아래 살았다. 환웅이 하루는 백호(白虎)와 교통하여 아들 단군을 낳았다. 그가 요임금과 같은 해에 나라를 세워 우리 동방의 군장이 되었다." 조현설 교수는 묘향산지에 전하는 신화가 더 오래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백호가 단군의 진짜 어머니 인가?"라고 반문하고는 호랑이와 호랑이를 시조모로 모시던 집단을 역사의 패배자로 여기던 우리의 사시(斜視, 잘못된 시각)를 교정할 필요가 있다고까지 했다. 그렇게 해야만 창조신 호랑이, 고조선의 국모 호랑이, 고려 왕가의 시조 호랑이, 그리고 산신 호랑이와 무수한 산신도에 보이는 호랑이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과연 그런가. 해답은 한민족 초기공동체의 형성과 이주 그리고 다양한 세력이 충돌했을 때 어떤 세력이 가지고 있던 종교가 주 종교가 되었는지를 분석한 연후에야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민속학자인 김종대교수는 곰이 신성성을 상실한 이유를 문화적 변화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수렵문화 시절에는 곰이 신으로 숭배되어 모셔졌지만, 점차 농경문화가 정착하면서 곰의 신의 위치를 상실하게 되었다고 보았다. 일면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 견해도 그리 설득력을 갖지는 못한다. 어쨌든 모두들 한반도에서 호랑이 신앙이 곰 신앙 보다 우위에 선 것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면서 그 답을 찾으려고 했다. 조현설 교수는 웅녀가 아닌 호녀가 혹 어머니 조상이 아닌가까지 생각하고 있다. 왜 곰은 사라지고 호랑이는 그 위세를 오늘날까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지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우선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해 봐야 한다. 하나는 단군왕검 사회가 형성되었던 위치를 고려해야 되고, 둘은 호랑이 산신 강세 지역에 대한 검토를 해야 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단군왕검사회는 지금 중국 요령성 서부와 내몽골 동부지역에 형성되었었다. 최근 주목받고 있는 홍산문화가 자리하고 있던 지역이다. 이들 지역에서 요동과 서북한 지역으로 그리고 한반도 전역으로 단군왕검사회의 주도층이 이동했다. 물론 그 이동은 시차를 두고 이뤄졌다.
호랑이 부족 동으로 먼저 이동 그와 같은 역사적 흐름을 고려하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건국신화에 나타났듯이 단군왕검사회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호랑이 부족은 주변으로 밀려났지 않은가. 그리고 실제로 호랑이 산신이 강세를 보이는 지역은 동시베리아와 백두산, 한반도로 이어지는 지역이다. 내몽골 서부에 남북을 뻗은 대흥안령산맥 서쪽에는 호랑이가 살지 않았다. 따라서 단군왕검사회가 형성될 무렵 그 사회에 동참하지 못한 호랑이토템 부족은 동으로 이주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럼 어떻게 되었겠나. 중국 요령성과 내몽골 지역에서 1000여년 이상 지속되던 단군왕검사회 시기에 호랑이 토템부족은 동으로 이동하여 요동반도나 한반도까지 진출했을 것이다. 그 후 단군왕검사회는 붕괴된다. 단군왕검사회가 무너진 시기를 이승휴는 『제왕운기』에서 은나라 무정 8년이라고 했다. 당시 단군왕검사회의 지도자들은 요동반도와 서북한 지역으로 이주한다. 그럼 어떤 상황이 벌어졌겠나. 호랑이토템 부족이 이미 터전을 잡고 사는 공간에 단군왕검사회의 주력이 이주한 꼴이 되었다. 해서 단군왕검사회의 주 종교였던 칠성신앙인들이 호랑이 속리산 법주사 독성 칠성 산신도 산신신앙을 수용하는 형국이 되었던 것이다. 이 구조가 오늘날 사찰에 그대로 남아 있다. 삼성각의 주존은 늘 칠성이고 그 옆에 산신과 독성이 모셔져 있는 모양새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그 사이 곰 신앙은 이미 상당히 약화되어 있었다. 칠성신앙에게 그 주도권을 잃었기 때문이다. 요동반도와 백두산지역 그리고 한반도에서는 아주 오래 전부터 호랑이 산신신앙이 발달해 있었다. 그리고 그 명맥은 계속 이어져와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그 위세를 잃지 않고 있다. 1930년대까지 만주 퉁구스인들에게 전해지던 풍습에 따르면,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가 원만히 해결되지 못하면 각각의 부족을 대표하는 대표 샤먼(무당)이 싸워서 승부를 냈다고 한다. 그때 샤먼들은 호랑이 부족은 호랑이로, 곰부족은 곰으로 변해서 싸웠다. 당시까지도 곰을 토템으로 하는 부족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부족 간의 경쟁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와 같은 이야기는 『삼국유사』가락국기에도 전한다. 탈해가 수로가 다스리는 가야로 들어와 시비를 걸었을 때, 수로왕은 그 도전을 받고 기술(奇術)로써 승부를 내자고 한다. 탈해가 변해서 매가되자 수로는 독수리로 변했다. 밀렸다고 생각한 탈해가 이번에는 참새가 되니 왕은 새매가 되었다. 그러자 이내 본 모습으로 돌아온 탈해는 수로왕이 자신보다 한 수 위임을 인정하고 물러났다.
|
|
|
경북연합일보 기자 - Copyrights ⓒ경북연합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
|
|
|
|
|
실시간 많이본 뉴스
|
|
|
|
|
최신뉴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