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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어떻게 쓸 것인가?
정석준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1월 29일(수)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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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장군이 산적을 물리치고 승전고를 울리며 근방 절을 찾아 갔다. 주지 스님은 출타중이고 사미승이 절을 지키고 있었다. 장군은 수백 명의 부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오만한 태도로 "스님,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 업보에 따라 극락에도 가고 지옥에도 떨어진다고 하는데 대체 지옥과 극락이 어디 있단 말이오?"하고 물었다. 장군의 말이 끝나자마자 사미승이 오른손을 번쩍 들어 그의 왼쪽 뺨을 후려쳤다. 엉겁결에 뺨을 맞은 장군은 순식간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수많은 산적을 물리치고 기세당당한 장군이 부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뺨을 맞았으니 화가 날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장군은 얼굴을 붉히며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단숨에 스님의 목을 베려 들었다. 이 때 스님은 맑고 평화로운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장군님, 장군님은 저에게 극락과 지옥을 묻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먼저 지옥을 알려 드렸습니다. 제가 장군님의 뺨을 치니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저를 죽이려고 칼을 빼지 않았습니까? 사람을 살해하려고 칼을 뽑아든 장군님의 분노한 마음, 그 자리가 곧 지옥입니다." 이 말을 들은 장군은 어이가 없어 뽑았던 칼을 다시 칼집에 넣으며 파안대소(破顔大笑)하였다. 그러자 다시 스님은 말했다. "장군님의 지금 마음 상태가 곧 극락입니다." 극락과 지옥은 사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하루에도 수없이 극락과 지옥을 왕래하고 있다. 아마 이 세상 누구도 지옥에서 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극락)을 바라고 불행(지옥)을 싫어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은 마음을 바로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마음을 잘 쓸 수 있는가? 마음을 잘 쓰려면 먼저 마음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육신이 나 인줄 알고 이름이 나 인줄 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한다면 이 육신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고 음식물을 먹고 이만큼 자란 것이다. 이름 또한 부모님이 지어 주신 것이다. 만약 육신이 나라면 눈 내, 귀 내, 코 내, 입 내, 몸 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눈 내, 귀 내, 코 내, 입 내, 몸 내라고 말하지 않고, 내 눈, 내 귀, 내 코, 내 입, 내 몸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육신이 참 나[眞我]가 아니기 때문이다. 육신은 마음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다. 마음이 가자고 하면 가야하고 서자하면 서야하고, 마음이 좋아하면 따라서 웃고 싫어하면 찡그리고…육신이 자동차라면 마음은 자동차를 운전하는 운전사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마음은 원숭이와 같아서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대상에 따라 천변만화(千變萬化)를 일으킨다. 마음은 크게 쓰면 삼천대천세계(三千大天世界)를 덮고도 남고, 작게 쓰면 겨자씨보다도 작은 것이 또한 마음이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코로 냄새 맡을 수도 없고, 손으로 만져볼 수도 없는 마음, 빛깔도 없고 모양도 없는 마음, 그러나 우리의 존재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마음이다. 마음은 눈·귀·코·혀·입·몸 등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하여 보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냄새를 맡기도 하고 맛을 보기도 하고 감촉하기도 하지만 이 자리는 찾을 수가 없다. 찾을 수가 없는 것은 과거에도 없고 미래에도 없고 현재에도 없다. 과거나 미래나 현재에 없는 것은 삼세(三世)를 초월해 있다. 삼세를 초월한 것은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다. 유도 아니고 무도 아닌 것은 생기는 일이 없다. 생기는 일이 없는 것에는 사라지는 일도 없고 가는 일도 없고 오는 일도 없으며, 죽는 일도 없고 태어나는 일도 없다. 또한 마음의 본성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따라서 부처나 중생이나 차별이 없는 것이다. 마음의 본성은 본래 청정무구(淸淨無垢)하다. 그러나 탐진치(貪?痴) 삼독심(三毒心)에 물들어 본성을 여의고 생사윤회 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구름이 걷히면 태양이 밝게 빛나듯, 이 삼독심만 제거하면 본래 마음을 되찾아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불교에서 견성성불(見性成佛)했다는 것은 곧 마음이 무엇인가를 깨쳤다는 말이다. 원효스님의 행장(行狀)을 보면 의상스님과 함께 불법을 공부하기 위하여 당나라로 유학의 길을 떠났다고 한다. 서해안에서 배를 타고 가기 위해 해물당주(지금의 경기도 남양만 부근)를 향하여 걸어 가다가 날이 저물어 인가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고 그냥 쓸어져 잠이 들었는데, 잠결에 목이 몹시 말라 물그릇을 찾으니 마침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서 실컷 마셨는데, 물맛이 얼마나 좋은지 마치 감로수와 같았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잠에서 깨어나 보니 잠을 잔 곳은 무덤가였고 마셨던 물은 해골에 고였던 물이었다. 해골에 든 물을 마셨다는 생각이 들자 원효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비위가 거슬려 간밤에 마신 물을 다 토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순간 원효는 부처님께서 화엄경에서 하신 말씀, 즉 "모든 법(法)은 마음 따라 일어나고(是生卽 種種法生) 모든 법은 마음 따라 사라지니(是滅卽 種種法滅)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것이다(一切唯心造)"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검은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온통 검게 보이고 푸른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세상이 온통 푸르게 보이듯이, 어떤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서 이 세상은 살 맛 나는 세상이 되기도 하고 괴로움과 슬픔의 세상이 되기도 한다. "아직 반시간이 남았다"는 것과 "반시간 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 다르다. 긍정의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 부정의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 낙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 비관의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서 이 세상은 극락이 되기도 하고 지옥이 되기도 하며, 행복한 인생이 되기도 하고 불행한 인생이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마음의 산물이요 마음이 지어낸 것이라면 그 마음을 어떻게 쓸 것인가? 이제 그 해답은 스스로가 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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