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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라를 위하여 - 낭만주의자 슈만의 사랑
전인식 시인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1월 16일(목)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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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내가 사는 도시에는 '슈만과 클라라'라는 카페가 두 곳이나 있다. 인근 도시에도 여러 곳 있는 것으로 안다. 이만큼 슈만과 클라라의 사랑에 대해서는 비단 음악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하다. 누구나 다 아는 식상할 수도 있는 이야기에 몇 글자 더 얹어 볼까 한다. 출판업을 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슈만은 어릴 적부터 문학과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 16세에 되던 해 부친이 사망하자 음악가로 가난하게 사는 것을 원하지 않던 어머니 바램대로 법률공부를 위해 라이프찌히 대학에 진학했다. 하지만 도저히 음악에 대한 열정을 삭히지 못한 슈만은 별도로 피아노 공부를 병행했다. 그때 찾아간 사람이 프리드리히 비크였다. 피아노 연주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슈만은 "법률가로 안정된 미래를 포기하고 연주자로 행복하게 잘 살겠습니다"라고 어머니에게 편지를 보내는 큰 결단을 내렸다. 슈만의 결심은 겁 없는 도전이자 모험에 가까웠다. 지금이나 그때나 음악은 신동 소리를 들으며 4~5세 무렵부터 오랜 연습을 통해서만 성공이 가능했는데 스무살 청년이 뒤늦게 도전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었다. 그의 스승은 강도 높게 슈만을 가르쳤고 슈만 또한 그에 걸맞게 혹독하게 연습을 거듭하다가 그만 손가락이 고장나고 말았다. 원대한 피아니스트로서 꿈은 좌절되고 작곡가의 길을 걷게 되는 결정적 사건이었다. 이후 어머니마저 여의고 슬픔이 가득할 무렵, 운명적인 사랑이 다가왔다. 바로 스승의 딸 클라라와의 사랑이었다. 스무살 슈만이 처음 보았을 당시 그녀는 11살이었다. 이미 클라라는 피아노 신동으로 불리며 주목을 받고 있었다. 두 사람은 십년 뒤 연인이 되어 결혼하기에 이르자 그녀의 아버지는 결사적으로 반대를 했다. 무명에 가까운 슈만에게 장래가 촉망되는 자기 딸을 맡길 수가 없었다. 클라라는 이미 피아노공연을 순회하면서 일정 소득까지 생겨나고 있던 마당이었다. 또한 자기 문하생이던 프리켄과의 연애사건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더 반대가 심했다. 클라라 또한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없이 자랐으며 아버지로부터 엄격한 훈육과 통제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고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녀에게 슈만은 음악적 동반자이자 등을 기댈 수 있는 안식처였다. 두 사람은 아버지이자 스승에게 끊임없이 결혼 승낙을 호소했지만 비크는 허용하지 않았다. 이에 굴복할 수 없었던 슈만은 마침내 결혼 허용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클라라의 아버지는 미성년 유혹사건으로 맞불을 놓았지만 끝내 슈만이 승리하고 클라라와의 결혼에 골인한다. 1840년, 이때가 슈만이 서른, 클라라가 스물 한살 때였다. 슈만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무려 183곡의 가곡이 작곡됐고 노래는 모두 클라라에게 사랑을 바치는 노래들이었다. 훗날 사람들은 '가곡의 해' 라고 칭하기도 했다. 이듬해에도 교향곡, 협주곡 실내곡등 다양하게 곡을 만들어 내는 슈만에게 클라라는 분명 뮤즈임에 틀림없었다. 슈만은 피아니스트로서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의 작품집 1~23번까지 모두 피아노곡일 만큼 피아노를 사랑했고 아내에게 대리만족을 얻었던 것 같다. 그들은 피아노로 한마음 한 몸이 된듯하다. 하지만 늘 좋은 일만 일어나지 않았다. 결혼성사까지 많은 에너지를 낭비한 휴우증이 있었다. 클라라를 늘 곁에 두고 싶어 하는 집착과 잘나가는 그녀의 명성에 비해 아무것도 아닌 자신에 대한 열등감과 사랑하는 만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질투심등이 조울증에 이르게 했다. 이런 와중에도 열심히 클라라의 연주여행에 동행하고 부지런히 작곡도 하며 '음악신보' 평론도 쓰며 무명이던 브람스를 발굴해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오케스트라단과의 갈등으로 점점 정서적으로 불안해지고 심신이 쇠약해지자 아편을 먹기도 했다. 여러 가지 환청에 시달리다가 라인 강에게 투신하기도 했는데 이때는 이미 회복이 불가능해진 상태였다. 결국 스스로 정신병원에 들어갔다.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클라라는 일곱째 아이를 홀로 출산하기도 했다. 입원 2년 후 클라라를 껴안고 "나도 알아"라는 묘한 말이 마지막 말이었다. 46세로 생을 마칠 때까지 서른 중반의 곱디고운 아내와 일곱 명의 아이들을 남겼다. 그리고 사랑으로 만들어 낸 많은 명곡들을 남겼다 낭만주의자 대표 음악가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슈만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살았고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에 충실하며 가슴이 원하는 삶을 실천하며 살았던 예술가다운 사람이었다. 비록 생은 짧았으나 한 여자에 대한 사랑은 승화돼 모두 노래가 됐다. 사랑을 갈구하는 젊은이 들에게 슈만의 노래 헌정(widmung)을 추천하고 싶다. 뜨거운 피가 흐르고 심장소리가 들릴 것 같은 노랫말을 곁들어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해 보라고.
당신은 나의 영혼, 나의 심장, 나의 기쁨, 나의 고통 당신은 내가 살아가는 세상, 내가 날아다니는 천국 당신은 나의 무덤, 그속으로 나는 영원히 내 근심을 묻었네 당신은 나의 안식, 나의 평화, 하늘이 내개 주신 사람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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