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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미학의 생명(2)
안수현 문학평론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1월 09일(목)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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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일본의 이러한 전통적 미의식은 식물적 세계관에 정착됐고 일찍이 고대 신앙과 관련된 '밝음 맑음 곧음(明·淸·直)'에서 출발한 것이다. 신앙에 기초한 미의식이 식물적 세계관의 가운데 곧은 것을 소중히 함은 수직과 수평을 조합한 직선적 미의식으로 보는 것이다. 환언하면 곡선의 철저한 배제와 부정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식물의 순환적 세계관을 목격한 물리적 사유는 인간의 미의식 역시 식물로부터 추구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잎이나 뿌리, 줄기, 꽃, 열매와 같은 미의식의 식물적 상징화가 和歌에 녹아든 미의식을 자극하고 그것이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재생되는 것이다. 적극적인 삶을 추구한 식물적 세계관은 그 자체 탐미적 경향을 띠는 것이 사실이다. 和歌 문학의 불확실성과 난해성으로 대변되던 특징이 식물 중심으로 사유되는 생명의 영원한 회귀를 보장하는 궤도를 모방해온 일본인의 미의식에 대한 매력과 설명이 가능하다. 또한 고지키(古事記)와 니혼쇼키(日本書記)에 언급된 일본의 신화 및 등장인물들을 파악함으로써 전통적 미의식의 원형까지 이해 가능한 것이라는 점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그들의 풍토성과 신화 및 종교를 파악하기에 유리하다. 따라서 주문과 같이 神代에 대한 장황한 설명은 우리에게 낯설기 그지없는 수많은 神名과 人名, 기이한 행적 또한 和歌의 미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귀족 및 관료뿐만 아니라 남녀 간의 사랑과 공식적인 의사소통의 가장 주요한 도구였던 和歌를 개입해 각 인물들의 생활상과 당시의 시대 상황 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후지와라노 데이카(藤原定家)'를 주목하고자 한다. 그는 일본의 중세가 개막된 시기 즉 헤이안(平安) 후기에서 카마쿠라(鎌倉) 초기에 활약한 歌人이다. 시대적으로 고대의 종료와 중세의 시작이라는 경계를 살았다. 그의 문학적 이상은 고대 부정된 미의식 余情과 妖艶의 부활을 통한 시 정신의 통합체로서 有心의 궁극적 실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듯이 지금까지 일본고전시학을 연구해 왔음에도 일본인의 미의식에 관한 체계적 성찰은 제대로 하지 못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가 일본의 미의식을 물어 볼 때 과연 무엇을 가지고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실로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기라성 같은 선배제현께서 이룩한 업적을 제대로 읽지 못한 탓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美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정리하지 못한 바가 가장 큰 원인이었음을 인정한다. 여기에는 서구미학의 영향도 들 수 있겠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을 읽고 헤겔의 미학을 진지하게 고민했으면서도 정작 定家歌論을 마주함에 소홀히 다루거나 무심하게 방치한 결과이다. 수많은 和歌 작품을 대할 때 마다 본질에 관한 사유는 덮어버리고 가벼운 분석으로 일관해 소중한 알맹이는 놓쳐버려 마치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한 어리석은 우를 범하고 만 것은 사실이다. 새로운 전환을 이룬 계기는 이인로의 『파한집』과 이규보의『백운소설』과의 조우였다. 흥미롭게도 이인로, 이규보는 藤原定家와 동시대를 살다간 歌人들이다. 양서의 공통적 구성은 詩話·逸話·記事 등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시화와 시평을 통해 당시 문단의 모방주의와 형식주의 경향을 극복하려는 문학적 신념을 엿볼 수 있었다. '파한(破閑)'은 '한가함을 깨뜨린다'는 단순한 심심파적의 기표라기보다, 무신정변에 의해 武人에 의한 현실지배를 수용할 수밖에 없는 난세의 각성과 은둔을 택해 지나간 왕조적 문예를 지향했다. 이는 비슷한 시기 일본 의 경우 왕조시대가 막을 내리고 역시 가마쿠라(鎌倉)의 무가정권으로 교체된 상황 아래 定家가 체험한 것과 유사하다. 현실은 옛 영화에 대한 회귀와 욕망이 감춰진 모순된 공간이었다. 따라서 이인로는 용사론(用事論)을 통해 시의 본질과 독자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표현과 시정신의 조화를 제창해 '어의구묘(語意俱妙)'를 강조했다. 즉 자유로운 시 언어의 선택과 新意를 기대했다. 이에 대해 이규보는 新意論에서 시어 및 내용의 통합을 지향하는 '어의쌍미(語意雙美)'를 주장했다. 이는 형식주의와 내용주의로 정리할 수 있으나, 이 규보의 시 창작방법론과 시 의미를 담은 시구불의체(詩九不宜體)와 新意論은 결국 형식에 대한 관심과 내용의 참신성과 연계함으로써 시의 완성에 이른다는 그의 선언이 곧 藤原定家의 歌論 가운데의 주장 즉 '情以新爲先, 詞以舊可用'과 유사한 맥락이라는 점이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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