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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교합으로 태어난 박혁거세 신화 새로 읽기
정형진 신라얼문화연구원장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19년 12월 17일(화)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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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 경북연합일보 | 사소부인의 아들 아버지가 없기로는 박혁거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혁거세 의 탄생을 전하는 두 신화는 북방에서 내려온 사람들의 정서가 반영된 것은 틀림없다. 하나는 북에서 내려온 부여계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고, 하나는 중국 북방 지역에서 이주해온 사람들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박혁거세 집단이 그들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하면 박혁거세 신화는 기원전 1세기 무렵의 신화라기보다는 신화가 편집되던 6세기 중엽의 의식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지금 전달되고 있는 박·석·김씨 왕족의 신화는 신라가 중앙집권화 되고 왕의 계보를 작성할 필요성이 생긴 시점인 진흥왕대에 편집된 것이다. 해서 혁거세 신화에는 박씨집단의 원형신화가 그대로 반영됐다기 보다는 편집할 당시의 의식이 반영되면서 복잡해 졌다. 초기 신라를 주도하던 여러 집단들의 신화적 사고가 복합적으로 반영됐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을 염두에 두고 혁거세 신화를 해석해야 바른 접근을 할 수 있다. 한 번 분석해 보자. 먼저 혁거세의 어머니로 등장하는 사소부인은 어떤 분일까. 전하는 전설은 이렇다. 사소부인은 원래 중국 제실(帝室)의 딸이었다. 대륙에 살 때 신선술을 배운 사소부인은 사연이 있어 서라벌로 들어와 눌러 살게 됐고, 돌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한 황제는 편지를 소리개의 발에 매어 부쳤다. 그 내용인즉슨 "소리개가 머무는 곳을 따라 집을 지어라"고 하는 것이었다. 소리개를 날려 보내니 선도산으로 가 앉더란다. 그래서 그곳에 터를 잡고 지선(地仙)됐는데. 그 사소부인이 처음 진한 땅에 와서 두 성자를 낳았고, 그 성인이 동국의 첫 임금과 왕비가 됐는데, 그분들이 혁거세와 알영부인이라는 거다. 『삼국유사』 감통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위에 소개한 이야기는 『삼국사기』 경순왕 조에도 나온다. 송나라 사신으로 갔던 김부식이 직접 들었다는 내용이다. 송나라 관반학사인 왕보라는 인물이 우신관에 모셔진 여자 신선의 상을 보고는 "옛적에 어느 제실의 여자가 있어 남편도 없이 아이를 베어 남에게 의심을 받게 되자 곧 (배를 타고)바다에 떠서 진한에 이르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이는 해동의 첫 왕이 되고 제녀는 지선이 돼 길이 선도산에 있다 하는 바, 이것이 그 상이다"라고 설명해 주었단다. 그렇다면 사소부인은 정말 중국 제실의 부인이었을까. 믿기 어려운 내용이다. 일연은 사소부인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것이 사실일 것이라고 단정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쓴 동기가 김부식이 배제한 고대의 역사를 기술함과 동시에 주체적인 우리 의식을 고양시키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부분에서만은 사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아쉽다. 역시 대국이나 큰 것을 우러르는 무의식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일부 학자들의 견해처럼 송나라에 있었다는 '옛적의 제실 여자'는 고구려의 유화부인 상이었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혹은 부여를 세운 동명의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송나라 관리가 사소부인을 중국제실의 황녀라고 한 것은 『삼국지』에 '진한이 마치 중국 진나라의 유민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기록한 것을 의식하고 이야기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사소부인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것은 신화에 등장하는 신화소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혁거세 신화에 말이 등장하는데 이는 북방유목민적 요소다. 소리개 또한 북방샤머니즘과 관련된 동물이다. 북방 샤머니즘에서 소리개는 신의 뜻을 전하는 새다. 그러니 차라리 사소부인은 부여 등 북방계 이주민과 관련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진위논쟁에 휩싸인 『한단고기』에서는 사소부인을 아예 부여계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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