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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춤(止)과 참음(忍)과 흐름(流)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5년 08월 11일(월) 19:27
↑↑ 서병진 전 경주여고 교장
ⓒ 경북연합일보
척추전방전위증과 협착증으로 고생하다 두 번에 걸친 수술을 받았다. 전신 마취에서 깨어날 때 못 견딜 정도로 아팠다. 무통(無痛) 주사를 외쳤다. 물론, 이미 무통 주사를 맞고 있으면서 무통을 외쳐댄 것이다. 한참을 몸부림치다 눈이 뜨여지고 나의 팔다리를 누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몸부림치는 사이 아픔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픔을 호소하면서도 아픔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흘러가게 하라. 참는다는 것은 그저 안간힘으로 억누르는 것이 아니다. “부쟁(不爭), 불간섭(不干涉), 불교정(不矯正)”이다. 억지로 하지 말라. 스스로 그러하게 두어라. 흔히 참는다는 것을 억제하고 눌러서 멈추는 행위라고 여긴다. 하지만 무위(無爲)는 참는 것을 ‘억제’가 아니라 ‘흐름’으로 이해하게 한다.
참는다는 건 무작정 억누르는 것이 아니다. ‘참을 인(忍)’이라는 말 속엔 ‘칼날 인(刃)과 마음 심(心)’이 있다. 칼날 같은 말과 감정을 마음속에 품는 것. 도상무위 무불위(道常無爲 無不爲). 도는 언제나 무위하되 하지 않음이 없다. 참는다고 해서 억지로 멈춰야만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자연스럽게 흘려보낸다.
감정도 마찬가지다. 억제하려고 할수록 더 커지고, 싸우려 할수록 더 날카로워진다. 하지만 그 흐름을 있는 그대로 인식하고, 그대로 두면 그 감정은 스스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이것이 무위자연의 힘이다. 억누르지 않고, 그냥 두는 것.
그러면서도 전혀 방임하지 않는 태도. 무위는 반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사적으로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현대 심리학에서는 이걸 ‘자기 거리두기’라 한다. 감정이 일어났을 때, 즉시 반응하지 않고, 그 감정을 관찰하고,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그다음에 반응할지 말지를 선택하는 것. 억지로 조정하지 않아도, 자연히 질서가 잡히는 상태가 된다. ‘참을 인(忍)’이 전통적인 의미에서 멈춤이라면, 무위(無爲)는 그것을 흘려보냄으로 진화(鎭火)시킨다. 참음은 급한 불을 끄는 소화기이고, 무위(無爲)는 불이 나지 않게 하는 구조 설계다. 감정은 스스로 잠잠해지게 되어 있다.
혜민 스님은, 잠시 멈추면 쉼 없는 분주함 속에서 놓친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고 했다. 누구나 살면서 머릿속은 복잡하고, 마음은 조급하고, 이 길이 아닌 데 하고 고민하는 순간을 겪는다. 아닌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순간도 겪는다. 그 순간순간을 지혜롭게 넘길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평온을 되찾고 싶을 때, 아픈 상처를 억지로 떼어내려고 하지 마라. 세상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 줄 수는 없다.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든 말든 그냥 내버려두어라. 싫어하는 것은 엄격히 말하면 그 사람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니다. 적이 많을 때는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지자.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이, 적과 싸워 이기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하다.
지금 처한 상황을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으면, 그 상황을 바라보는 마음을 바꿔라. 원래 나쁜 것도 없고, 원래 좋은 것도 없다. 내 마음의 상(相)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니 좋은 것, 나쁜 것이 생긴다.
열 받는 말을 들었을 때 바로 반응하지 마라. 말을 듣자마자 바로 하는 반응은 두고두고 후회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을 때보다 하지 않아야 할 말을 했을 때 더 후회하게 된다.
지금 눈앞에 새로운 정부의 발걸음이 거침없어 보인다. 보무(步武)가 당당하다. 새로운 정치풍토의 판을 깔고 있다. 여기서도 멈춤과 참음이 절실히 요구된다. 직접 보고 있지 않은가. 멈춤과 참음, 자기 거리두기를 잘못하여 하룻밤 사이에 정권을 고스란히 바치고도 구치소에서 회한의 끙끙거림으로 실명(失明)을 호소하고 있지 않은가, 추락하는 것에 날개가 있을 리 없다.
경북연합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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