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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칼럼
사후의 문제
정석준 수필가
경북연합일보 기자 / 입력 : 2020년 06월 17일(수) 17:18
ⓒ 경북연합일보
육신의 죽음은 생(生)의 끝인가. 또 다른 생의 연속인가? 저 세상-천당과 지옥-은 정말 있는 것인가? 윤회한다는 것이 사 실인가?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이 문제는 정말 난제(難題)요 수수께끼요 아포리아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문제는 결국 형이상학적인 문제로써, 과거에는 철학과 종교에서 다루어 왔으나, 18세기 독일의 철학자 칸트가「순수이성론 비판」에서“사후의 문제는 논증할 수 없는 것.”이라 하여 철학에서 제외시켜 버림으로써 오늘날에는 종교의 영역에서만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내세가 있기는 뭐가 있어? 나쁜 일 하지 말고 착한 일 하라고 공연히 지어낸 이야기이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하루살이가 어떻게 내일이 있음을 알겠으며, 가을 한철 사는 메뚜기가 어떻게 이듬해 봄이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인가? 너나없이 그 알량한 지식으로 죽으면 그만 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될 일이다.
세계 4대 성인 가운데 공자님을 제외한 석가 예수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도교의 장자 같은 성인들은 한결같이 내세를 말하고 있는데, 문제는 내세에 대한 견해가 같지 않다는 것이다.
공자님은 살아 계실 때, 십대 제자의 한 사람인 자로가 공자에게“우리가 살다가 죽으면 어떻게 됩니까?”하고 물으니, 공자께서 대답하기를“금생의 일도 다 모르는 데, 내생의 일을 어찌 알겠느냐.”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것을 통해 볼 때 유교는 매우 현실적이다.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이 유교의 한계라고 할 수 있다. 유교에는 내세관이 없기 때문에 유교를 종교라고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지금까지 늘 논란이 되어 왔다.
소크라테스는 신을 섬기지 않고 젊은이들을 타락 시켰다는 이유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 소크라테스의 대화편을 보면, 그의 친구 클라톤이 소크라테스를 찾아가 해외 망명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쳐놓았으니 탈옥할 것을 권유하자“부정의(不正義)를 부정의로 갚아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자신이 탈주를 하게 된다면, 추악한 방법으로 법에 부정과 가해를 가하고, 자신의 평생과 약속과 합의를 깨는 것이며, 자신이 이승에서 아테네 국법을 죽이려고 하였다는 것을 하데스 국법, 저승국법이 알게 된다면 저승에서도 저승국법이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기꺼이 독배를 마셨다고 한다. 이로써 볼 때 소크라테스는 저승이 있다는 것을 확신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장자는 그의 처가 죽자 토기대야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문상을 간 혜자가 이를 보고“한 평생 동고동락(同苦同樂)한 처가 죽었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하자, 장자는“그렇지 않다. 내 처가 죽은 것이 이것이 처음이라면 어찌 처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본디 근본을 생각하면 본래 죽음이란 없는 것이다. 그러하니 내 어찌 소동을 피우며 통곡하고 슬퍼하겠는가? 그런 짓은 사리를 분별치 못한 행위이니, 이 때문에 곡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을 신의 피조물로 보았다.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신이 만들었다고 보았기 때문에, 사람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때에도 남자는 남자의 육체, 여자는 여자의 육체, 그리고 유아로서 죽은 사람은 성인의 육체를 가지고 승천한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이 죽으면 천당에 가기도 하고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지만, 이때에 그렇게 가는 것은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도 따라서 간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천당에 갈 수 있는 가? 그 선결조건은 철저한 믿음, 무조건적인 믿음이다. 그럼 기독교에서는 구체적으로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이 구세주(救世主)임을 믿어야 하고, 성령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하여 태어난 것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이죽은 지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신 것과 하늘로 승천하신 것, 그리고 이 세상에 다시 심판하러 오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런데 구원의 문제에 있어서 가톨릭과 개신교의 입장이 다르고, 개신교 내에서도 사뭇 다르다. 가톨릭에서는 전통적으로“인간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과 함께 선행을 실천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쳐 왔다. 그런데 루터는“인간은 선행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신앙〕으로만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였고, 칼뱅은“인간의 구제 여부는 전지전능한 신의 자의에 의하여 미리 예정되어 있다.”는 예정설(豫定說)을 내세웠다. 16세기 초 교황의 면죄부 판매에 대한 반발을 계기로 벌어진 이 논쟁은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가 갈라서며 종교 전쟁의 불씨가 되기도 하였다.
칼뱅이 예정설을 내세운 이유는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무조건 천당에 간다면,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위를 주장하는 기독교의 교리와 모순되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수능350점을 받으면 서울대학교에서는 그 학생을 불합격시키고 싶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도 어쩔 도리가 없이 그 사람을 천당에 보내 주어야 하는 자기모순에 빠지기 때문에, 칼뱅은 천당에 가고 못가고는 오직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으며, 그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다는 예정설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럼 불교에서는 삶과 죽음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불교에서는 삶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기 때문에 삶이 있으므로 삶과 죽음을 같은 것도 아니며, 또한 다른 것도 아니다[不一不異]라고 본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마음과 육신은 같은 것은 아니지만 또한 다른 것도 아니며, 마음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 육신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육신에는 생노병사(生老病死)가 있기 때문에, 그 육신으로써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경우에 마음은 그 육신을 떠나는데, 이것이 죽음이라고 보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집을 짓고 살다가 그 집이 허물어져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을 때, 새 집을 지어 이사를 가는 것처럼 마음이 육신이라는 집에 살다가 그 육신이 더 이상 쓸모가 없게 되었을 때 그 육신을 떠나는 것이 죽음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떠나가는 마음은 육체로부터 해방되어 완전한 자유를 되찾아 그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육신이 생전에 지은 업(業)의 전부를 고스란히 지닌 채 자신의 업에 맞는 새로운 몸을 받는다고 한다. 이것이 이른바 불교의 윤회설이다.
윤회란 고정불변(固定不變)하는 어떤 주체가 한 생에서 다른 생으로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면서 계속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나비는 알에서 애벌레-번데기-나비로 변화하는데, 알과 나비는 같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알의 상태에서 나비로 되기까지 변하지 않고 옮겨가는 것은 어떤 것도 없지만 알과 나비의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즉 알 속에는 나비가 될 수 있는 조건이 쓰며 있는 것이다. 이 변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 우리가 짓는 업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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